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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세상읽기⓶] 공존의 법칙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6월 19일(수) 07:15
ⓒ 경북문화신문
지루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견디기 힘들 때는 『노인과 바다』(헤밍웨이)의 산티아고 노인을 떠올린다. 84일 간의 긴 기다림 끝에 대어를 낚았으나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 뼈만 앙상한 청새치 잔해가 그의 배에 묶여있을 뿐인.

사람이 삶을 살아갈 때는 즐거움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일도 적지 않다. 이러한 고통은 한 개인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며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산티아고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고비 마다의 과정에서 삶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느끼기보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극기정신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만심 없는 산티아고는 자신에 대한 대어의 저항을 훌륭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사투 끝에 잡은 대어가 훌륭한 행동 양식과 위엄을 갖고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기 때문에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생각하며, 다정하게 대화까지 나눈다. 반대로 상어에 대해서는 증오를 느끼게 되는데, 이유는 상어가 강도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상어는 대어와 노인처럼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섭리를 무시하고 남이 애써 얻은 물건을 빼앗아 가는 무리이다. 그러나 노인은 상어와의 싸움에서조차 대어를 빼앗긴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실수로 자신에게 닥친 행운이 파괴당했다고 느끼는데, 이러한 생각은 불운한 환경 속에서도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바탕이 되고 있다.

6월 하순. 우리 마을에서 대형축사건축 반대 운동을 펼친 지 석 달이 넘었다. 아직도 극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그러면서 늘 이런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인간은 세상의 복잡함과 불가피한 모순,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를 지니고 사는 유한한 존재인데도 마치 신인 것처럼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산티아고는 바다에 나간 지 85일이 되는 날 드디어 대어를 만난다. 거대한 꼬리를 움직이며 배 주위를 회전하는 대어 청새치,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은 현기증을 느낀다. 입이 너무 말라 말도 잘 나오지 않고 물병을 잡을 힘조차 없다.
“침착하게, 힘을 내라 늙은이야.”
“정신 차려라, 머리야. 정신 차려.”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쓰면서 이윽고 배를 지나가는, 길고 깊고 넓고 자색으로 아롱진 은빛으로 빛나는 큰 몸집을 지닌 대어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새삼 인식한다. 바로 그때 노인은 작살을 들 수 있는 데까지 높이 쳐들어 있는 힘을 다해 아니 마지막 힘까지 다 짜내 고기 옆구리를 향해 내리 찔러 깊숙이 박았다. 작살엔 죽음뿐만 아니라 사랑의 의미도 들어있었음을 안다. 사랑하는 친구이자 적인 대어의 존엄성을 지켜줌으로써 산티아고는 자신의 특이성과 개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건 산티아고는 단지 물고기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넘지 못한 어떤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반대 집회를 위해 설치한 천막 아래에서 축대를 쌓다 만 축사건축 예정 부지를 바라본다. 유월의 눈부신 햇살 속에 놓여있는 넓디넓은 땅의 건너편에 처가의 가족 묘소가 두렷이 보인다. 어떤 목적으로 이 싸움(?)을 시작했던가. 마을 주민으로서 청정지역을 지킨다는 생각이었지만, 한 인간으로서 정정당당하게 상대방에게 도전장을 던진 기억은 없다. 저들을 상어떼로 보고 그저 나의 고기를 지키려고 무던 애를 쓴 것 같다. 분명 저들이 상어떼는 아닌데도 우리는 상어의 습격으로 보고 이를 확대 해석하면서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규정지어 버렸다. 노인은 며칠 동안 한잠도 못 자면서 무거운 줄을 고통스럽게 잡고 대어를 기다린다. 그럼 나의 대어는 무엇일까.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기나긴 싸움(?)이 끝나고 저들이 물러간다면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오게 될지 궁금하다. 축사를 지으려던 이들을 마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끝날 일은 아니다. 진정 공존의 대상이 인간과 자연이라면 인간은 누구나 자연과 함께 살아갈 자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다움을 위한, 인간 본연의 자세를 성찰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있어 인간이야말로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이 아니던가. 자연과 인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명제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운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
경북문화신문 기자  gm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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