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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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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가 10일 서성동 왕산역사공원에서 관내 기관단체장, 시민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왕산역사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준공식은 식전행사로 VFM남성중창단 공연과 의식행사로 사업현황 및 경과보고, 유공자 감사패수여, 기념사, 축사, 표지석 제막식, 기념식수, 장원봉 복원을 위한 흙쌓기, 연못 물고기 방사, 촛불행진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상주인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역사와 문화의 산실인 왕산역사공원 조성공사에는 총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부지를 매입한데 이어 2010년 10월 착공에 들어가 유적발굴조사와 보존대책 수립, 정자, 산책로, 연못, 음수대 등을 설치하고, 금도랑가를 재현(80m)했다. 또 소나무숲을 조성했다.
성백영 상주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왕산역사공원 조성은 상주의 문화와 역사를 재현함과 동시에 도심지의 부족한 공원시설을 확충함으로서 상주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쾌적한 도시경관 조성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주시 서성동 시내 중심부에 솟아 있는 해발 71.3m의 작은 산인 왕상은 상주에서 과거(科擧)에 장원한 사람이 많이 배출되면서 이 산을 장원봉(壯元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임진왜란 전까지 상주선비 68명이 문과에 급제했다.
산의 높이는 수십길에 불과하지만 이 산을 의지해 조선조까지 관아가 있었고, 산 아래에 연못이 있었다. 또 연못이 바다와 연접해 있어서 매 자오시(子午蒔)에 조수(潮水)가 오고 조수가 이정(夷亭)을 지나면 장원(壯元)이 난다고 했는데, 조수가 이 곳까지 미치면서 인물이 많이 난 고장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병이 정상에 층루(層樓)를 지었고, 그 후 40여 년이나 장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왕산의 왕(王)자를 같은 발음인 앙산(央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노악(露嶽)· 석악(石嶽)· 연악(淵嶽)이 이산을 알처럼 품고 있고, 남천과 북천이 탯줄처럼 영기를 낙동강으로 이어 멀리 바다까지 미치므로, 삼산이수(三山二水)·삼악(三嶽)의 고장이란 이름이 왕산을 중심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이 산의 느티나무 숲은 천연의 정자로 관리들이나 상주 선비들이 휴식하며, 자주 문회(文會)를 열던 공간이었다. 이준(李埈)이 ‘왕산괴정(旺山槐亭)’ 시를 남겼다.
상주성 서쪽 파로문(서문) 지역에서 왕산 뒤편으로 흐르는 냇물이 금도랑이다. 이 물은 성 동쪽 공락문(동문) 지역으로 흘러 병성천으로 흐르고 있으며, 사금이 나오는 도랑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도랑과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성의 금도랑 북쪽으로는 부원, 남적, 동쪽으로는 병성, 외답으로 이어져 금광이 있었고, 금도랑 남쪽인 낙동, 화산 구봉에도 금광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 있는 금도랑의 역사는 1300년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