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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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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의회 손홍섭 의원이 8일 열린 구미시의회 본회의 5분발언을 통해 6.25 전쟁 당시 형곡동 오폭사건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촉구했다.
이날 손의원은 6.25 전쟁 이후 60여년 동안 구미는 대한민국 내륙 최대의 수출도시로 급부상한 가운데 지난해의 경우 수출 335억불을 달성하는 등 국내외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시민들의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피눈물 나는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서 형곡동 미군 오폭 사건의 비극을 공개했다.
손의원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시무실과 사창으로 불리던 형곡동은 130여호가 살고 있는 산간농촌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금오산 자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지리적인 특수성 때문에 김천, 북삼을 비롯한 사곡, 상모, 임은, 오태, 광평등 인근지역에서 피난을 가지 못한 주민들이 피신처로 몰려들 만큼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치열했던 1950년 8월 16일 (음력 7월 2일) 오전 10시경, 형곡동 주민들과 피난민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냇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미군 전투기가 무차별 폭격을 가해 수백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당시는 북한군이 총공세로 임시 수도인 대구 방어선의 함락이 우려되던 때였다. 이에따라 유엔군은 대구를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다부동 전투를 전개했고, 북한군은 낙동강 반대쪽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형곡지역 시무실과 사창 두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이 와중에 형곡동 주민과 피난민 등 13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특히 당시 피해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이 된 마을 주민인 고 김왕개 씨등 일가족 12명이 사망하고, 고 이종록씨 일가족 9명도 사망했다. 이는 미군측의 오폭에 따른 명백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피해 사실과 관련 지난 1992년 피해자 유족들은 비명에 간 원혼을 달래고, 영혼을 기리기 위해 '위령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군오폭에 따른 피해와 관련 국방부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미군의 미자로 꺼내지 말라'는 냉담한 회신만 있을 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1992년과 2005년 위령탑 건립을 위해 2회에 걸쳐 구미시에도 건의서를 제출했으나 이 또한 시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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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시무실 |
이후 피해 주민들은 진실화해 위원회를 상대로 형곡동 미군오폭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혀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따라 지난 2007년 1월 조사개시 결정통지서를 받은 뒤 2년이 지난 2009년 4월, 비로소 현장조사를 실시하게 됐다.
결국 지난 2010년 6월 진실화해 위원회에서 형곡동 미군 오폭사건이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지금까지 피해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나 명예회복은 요원한 실정이다.
더군다나 사건을 맡았던 진실화해 위원회의 모 조사관은 " 미군 전투기의 오폭에 따른 피해와 관련 강원도 강릉, 제주, 전남 곡성등 다른 지자체에서는 위령탑 건립 등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반면 구미에는 그 마저도 없는 것 같아 애석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손의원은 밝혔다.
손의원은 " 6.25전쟁이 발발한지 6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면서 " 지난 날 암울했던 역사의 진실을 규명해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손의원은 또 " 비명에 간 원혼을 달래고, 오랜 세월동안 불구의 몸으로 가슴아픈 인생을 살아온 피해주민과 유족을 위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수 있도록 위령탑 건립을 강력이 촉구한다"고 거듭 밝혔다.
손의원은 특히 "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은 이미 강릉시를 비롯한 동해시, 제주도, 곡성군, 예천군 등 전국적으로 많은 지자체에서 앞서 건립했다"고 밝히고 " 구미시에서도 빠른 시일내에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의원의 위령탑 건립 촉구는 매우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경북문화신문 역시 지난 2007년부터 위령탑을 건립해야 한다면서 형곡동 비극사를 수차례 보도해 왔다.
이와관련 구미시민들은 "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굴곡의 역사속에서 비극을 겪은 시민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이를 공론화한 손의원의 결단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시작돼 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까지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전국적으로 이뤄 졌고, 경북도 여러 지역에서도 동시에 이뤄졌다.
알려진 사건만해도 구미시 형곡동 시무실 미군 폭격기 맹폭사건을 비롯 부역혐의 사건, 보도연맹사건 등이 있다. “부역혐의 희생사건”은 인민군 점령시기에 군.경이 부역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민간인들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며, “국민보도연맹사건”은 1950년 당시 도내 지역에 주둔, 활동했던 군.경이 좌익 활동과 무관한 비무장의 민간인들을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집단 살해한 사건으로서 대표적인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도내 민간인 학살 희생현자 수는 총 3천475명으로 이중 부역혐의 279명, 보도연맹사건 1천470명, 미군폭격 299명, 기타 1천427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까지 포함하면 억울한 희생을 당한 민간인 수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도내 민간인학살과 관련 진실규명을 신청한 39건 중 36건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로 규명, 결정이 내려져 희생자와 유가족의 참혹했던 아픔을 헤아리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