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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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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교산 허균선생이 말하기를 허주 이징은 이경윤의 서자이며, 아버지 이경윤과 삼촌 이영윤이 모두 그림을 잘 그렀기 때문에 이징은 그림에 내림을 받아 독자적으로 명가가 되었다. 산수화ㆍ인물화ㆍ새ㆍ대나무ㆍ풀벌레ㆍ꽃나무 등에 까지 모두 그 법칙을 얻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칭찬하며, 나옹 이정이 죽은 후에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화가가 되었다. 이징의 소첩에 아이를 씻기는 두 여인의 그림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였는데, 이정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풍성한 살결이며 아양 부리는 웃음이 그 요염함을 한껏 발산하여 아리따운 자태가 너무도 잘 그리어 신묘한 작품이다. 이것을 오래도록 펴놓고 싶지 않으니, 오래 펴놓으면 밤잠을 설칠까 두렵다고 격찬하고 있다.
-이징(李澄)의 화첩(畫帖)에 대한 발문-
허주(虛舟) 이징(李澄)은 학림정(鶴林正) 이경윤(李慶胤)의 서자이다. 그의 부친 이경윤(李慶胤)과 숙부 이영윤(李英胤)이 모두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 이징이 그 학술을 이어받아 마침내 독자적으로 명가(名家)가 되었다. 산수화ㆍ인물화를 비 롯, 모든 새ㆍ대나무ㆍ풀벌레ㆍ꽃나무 등에까지 모두 그 법칙을 얻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칭찬한다. 나옹(懶翁) 이정(李楨)이 죽은 후 그가 곧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화가가 되었다.
나는 이징에게 여러 가지 모양을 소첩(小帖)에 그리고 아이를 씻기는 두 여인(女人)의 그림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였는데, 이정(李楨)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풍성한 살결이며 아양 부리는 웃음이 그 요염함을 한껏 발산하여 아리따운 자태가 너무도 핍진(逼眞)하니 역시 신묘한 작품이다. 이것을 오래도록 펴놓고 싶지 않으니, 오래 펴놓으면 밤잠을 설칠까 두려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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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주 이징의 백응박압도(白鷹搏鴨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