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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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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생애 최고로 여겼던 20대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질서와 사랑의 미학을 갈망해야 할 문학, 그러나 잘못된 관념의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 20대의 삶은 마치 무정부주의자 였습니다.
이념이 다르다고 연장자에게 침을 뱉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많은 선배들을 적대시 했으니 말입니다.
그 당시 그 버릇없던 20대에게 “문학을 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라”며 충고를 해 주던 문학선배가 계셨습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였던 그 선배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20대로부터 저주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충고가 진실된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후였고, 고마운 선배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4월 11일 실시되는 총선이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19대 구미총선은 역대 총선과는 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예비후보자만도 구미갑10명, 구미을 11명 등 21명에 이릅니다. 여기에다 2개 선거구에서 도의원 보궐 선거와 1개의 선거구에서 시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선거가 과열되면서 인터넷과 SNS상에서는 실명을 숨긴 익명의 예비후보자와 그 편에 선 많은 응원군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논쟁은 바람직합니다. 토론과 논쟁은 민주사회를 발전시키는 양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포장해 상대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총과 칼을 들지만 않았을 뿐입니다. 온란인상이나 구전 속으로 들어가보면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쓰러뜨려야 이길수 있다는 쿠데타적 발상이 마치 선거판의 원칙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심지어는 우리나라 정치 문화의 고질적 병폐인 소지역주의가 구미총선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윈윈해야 할 공동체에 이질감을 불어넣어 어떻게든 승리를 해야 하겠다는 발상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먄 사람과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인으로서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의 대상은 사람이고, 사람의 삶이고, 삶들이 모인 사회이고,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 일선에 뜻을 둔 정치지망생들은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어야 하고, 누구보다도 정직해야 하고,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돼 있어야 하는 것은 정치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며, 또 정치인을 응원하는 후원인들 역시 사람이 먼저 돼 있어야 합니다.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기본적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은 듯 합니다.
자신을 돕지 않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다른 뜻을 갖고 있다고 해서 오랫동안 쌓아온 인간 관계를 파괴해 버리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런 절망적 현상을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정치를 맡긴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아온 세상에는 변증법이라든지, 음양의 논리라 든지,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작용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은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더욱더 아름다운 질서의 세계로 유도해 나가기 위한 고민들이 낳은 산물이었습니다.
재차 강조하고 싶습니다.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후원자들은 정치인 혹은 정치지지자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위하고, 사람의 삶을 위하고, 삶들이 모여 살아가는 지역과 국가를 위하겠다는 이들이 사람이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고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절망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을 쓰러뜨려야 내기 이긴다는 쿠데타적, 폭력적 발상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상대를 추월하기 위해 태클을 거는 짐승적 사고보다는 상대를 추월하기 위해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는 진지하고 진솔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악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상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진솔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면 정정당당한 방법을 통해 논쟁의 장을 제공하고, 유권자들이 자잘못을 가리도록 하는 민주적 광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어떤 방법과 수단을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집착에 빠지기 시작하면 인간성은 오간데 없을 것입니다.인간성이 없는 존재는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문학에 빠져들었다고 착각하던 20대, 연장자의 인격을 무시하기를 일삼던 그 관념에서 늦게 탈피했기 때문에 필자는 지금도 무명작가의 길 위에서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