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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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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시대 촉나라 제갈량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든 아니면 문학으로 형상화된 가공의 인물이든 모두 어질고 유능한 재상으로 정평이 났다. 도덕과 인격 그리고 지략에서 까지 흠결이 없다.
제갈량은 타고난 문무에 재능 면에서도 조조보다 탁월했다. 그러나 조조는 사람이 많이 따랐고, 제갈량은 그렇지 못했다.
제갈량은 주경야독하는 성격으로 매번 스스로 전략을 세우고 그것도 못 믿어 직접 전쟁을 감독하고 수행했다. 아마도 남에게 맡기면 불안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갈량의 최대 비극은 “후계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27년간 촉나라 승상으로 재위하면서 자신을 대신할 인재와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실책이다. 뛰어난 영웅들의 독선인지 몰라도 남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모든 걸 처리하려 한다. 부하들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 해주지 않는 주인에겐 사람이 모이질 않는다.
왕조시대엔 후계자가 당연히 아들이다. 자신의 장자를 황태자로 임명하여 대를 이어가도록 한다. 권력이란 부자지간에도 서로 나눌 수 없는 것이기에 아들이 왕인 아버지를 시해하는 역사도 종종 있다. 섹스피어 명작 “리어왕”에서도 리어 왕은 분별력을 잃고 섣부른 후계 결정으로 인해 두 딸에게 쫓겨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에서 딸을 저주하며 죽어 가는 장면이 나온다.
청나라 강건성세(康健盛世) 치세를 이끌어 간 강희제는 60년을 통치하며 황금 치세 기반을 다진 이다. 강희제는 강희 14년에 갓 돌을 넘긴 자신의 적자 ‘윤잉’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강희제의 권좌가 오래 지속되자 30여 년이나 황태자의 자리에 있던 윤잉의 세가 황제를 능가 할 정도가 되었다. 신하들이 차기 권력인 황태자에게 미리 보험을 들기 위해 몰리어 황태자를 어렵게 만들었고 그 폐해가 심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강희제는 황태자를 폐위 시켜 버렸다. 그러자 23명의 황자들이 저마다 태자 자리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 중 첫째 황자와 8황자가 가장 유력한 후보를 대두되었다. 두 황자 배후엔 나름의 세력이 작용했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이 태자 자리에 눈독이 들어 있을 때 권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정성으로 아버지를 보필한 황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넷째 아들 윤진 이었다. 그는 권력에 초연한 태도로 효성을 다해 부황을 모셨고 또한 그의 배후엔 지원하는 세력도 없었다. 강희제는 윤진의 인품을 높이 사 그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그가 바로 옹정제이다.
2인자 자리를 두고 골육상쟁과 궁궐의 복잡한 암투를 경험한 옹정제는 후계다툼을 원천봉쇄하기위해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을 실시했다. 즉 후계자를 미리 공표하지 않고, 황제가 그 이름을 쓴 종이를 상자에 밀봉해 집무실내에 있는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 써진 현판 뒤에 두면, 황제 사후 대신들이 입회해 이를 개봉하고 후계자를 정하는 법이다. 이는 국가 에너지를 피비린내 나는 권력 암투에 허비하는 사태를 막고 슬기롭게 레임덕을 예방하는 절묘한 제도였다.
근 현대사를 보아도 2인자의 처신은 무척 어렵다. 김 종필 전 총리는 5.16 혁명의 핵심인물로 누가보아도 후계자로 인정했다. 그가 후계자로 회자되자 처신을 극도로 자중했으나 권력은 가만두지 않았다.
“자의 반 타의 반”이란 말을 남기며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영원한 2인자로 만족해야 했다.
5공 시절 전두환 대통령은 친구인 노태우 장군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는가? 했다. 새로운 권력을 쥔 노태우 대통령은 그를 청문회 장으로 끌어냈다. 권력 앞에 친구의 우정은 여지없이 버려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이후 김 영삼. 김 대중. 노무현 대통령들은 딱히 후계자를 키워 내세우지 않았다. 안 키운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2인자가 없었다. 그 결과 정권을 상대 진영에 내 주고 말았다.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어도 권력은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쟁취한 사람은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다. 고양이 라고 키운 것이 나중에 호랑이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잠재적 경쟁자는 사전에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총선 공천 신청을 마감하자 틈이 생긴 지역구엔 이름 모를 신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자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저마다 “누구의 후계자”.“누구의 아들이라”칭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