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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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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가 그러하 듯 정치사에도 영원이란 없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다. 봄날에 피어 난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 덤불도 머지 않아 낙화하지 않던가.
영원이란 있을 수 없다. 이상기온 보다도 더 변화무쌍한 것이 정치세계이다. 어제의 적이 내일 우군이 되고, 내일의 우군은 머지 않아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정치는 출발한다.
정치적 야망을 가슴에 품어 안고 민심 속으로 뛰어든 정치인들의 마지막 꿈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최종 승자가 둘이 될 수 없으니, 패한 자로부터 승자는 늘 존경이 대상이면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정치세계에 2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9대 구미총선이 멀고 긴 여정 끝에 막을 내렸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이번 구미총선은 혼란스러운 선거였다. 여야 정치권이 개혁과 혁신공천을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수많은 정치 지망생들은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정치의 광장으로 몰려들었다.특히 다선의원과 고령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각당의 공천룰은 총선전을 관망해 온 정치지망생들의 마음에 바람을 집어넣는 구실로까지 작용했다.
중앙정치권에서 몰아닥친 과열 공천바람은 3선과 4선을 겨냥하고 잰걸음을 하고 있는 구미갑-을 선거구로 마치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이러한 정치바람은 결국 예비후보자의 경우 구미갑 10대1, 구미을 12대1, 본선 후보의 경우에도 구미갑-을 공히 6대1이라는 구미총선 역사상 유례없는 경쟁률을 촉발시켰다.
후보자의 과열양상은 다양한 계층의 성향을 총선에 반영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자칫 계층간, 지역간의 분열을 가속화시킬수 있다는 우려 또한 노정돼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만도 아닐 것이다. 결국 이러한 우려와 기대감 속에서 마치 험산준령의 고개를 넘듯 휘영청 걸어온 4개월이라는 시간이 종료됐다.
이제 우리는 도약을 통해 부흥을 거듭하는 구미역사 실현을 통해 모든 시민이 행복하고 편안한 구미시대로 나가야 한다. 필자는 총선 과정 중 구미갑 지역을 중심으로 불거진 소지역 갈등 조짐을 지켜보면서 상당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간 지역갈등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분열된 국론이 국가 번영과 국민 행복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국가발전의 위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동서간 지역갈등에 따른 국론분열의 기운은 활화산이라는 지하에 갇여 여진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메이컵해 냈다는 점에서 안타깝고 서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미갑 총선 과정을 통해 소지역간 갈등이 고개를 들 조짐을 보였다는 점은 우려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구미는 조상대대로 이 땅을 지키고 가꿔온 선량하고 현명한 기존 구미인과 허허벌판의 낙동강벌을 개척하고 그 곳에 구미공단 조성을 통해 산업근대화의 기적을 이룬 신구미인이 공존공생해온 위대한 터전이며, 또 구미인과 신구미인들이 낳은 후세들이 하나의 구미인으로 뭉쳐 구미를 가꿔나갈 미래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이 선량한 구미시민들을 대상으로 소지역 주의를 자극해 표심을 꽤어차려고 했던 점에 대해서는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할 듯 싶다. 지금 우리는 태생적 고향과 생활적 고향에 의미를 두지 않는 윈윈공동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구미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식들은 수도권이나 혹은 해외로 야망을 펼치기 위해 진출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식들이 현지의 일부 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소지역주의의 희생양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지혜와 슬기를 가져야 할 때이다.
따라서 새롭게 탄생한 정치계층은 이점에 유념하고 지역민의 화합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하고, 현명한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부터 버리는 용단이 필요하다. 선거기간 중 자신을 지지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논공행상의 전유물이 될 경우 제2의 구미 도약의 시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총선 결과를 통해 나타난 영광은 자신이나 측근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영광은 어디까지나 구미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영광의 빛은 구미를 재도약시키는 화력발전소가 되어야만 한다.
반면 무조건 반대를 하고 보자는 독재적인 사고의 발상 전환도 필요하다. 선거 기간 중 표출해 낸 자신의 바램은 오로지 진실이라는 구태한 인식으로부터의 탈피해야 한다. 바램은 바램일 뿐이다. 그 바램이 결론을 도출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비토를 놓는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시민적 자세에 위반하는 우둔한 행위일 수 밖에 없다.
결과에 순응하고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지는 것도 이기는 것이고, 이기는 것도 이기는 것이라는 민주적 진실의 의미를 우리가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선자든 낙선자든지 간에 그들은 소중한 참정권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유력정치인 1인이 100표를 행사하고 가난한 이가 1표를 행사하는 비민주적 사회를 탈피하기 위해 우리는 무던히도 많은 희생을 감수해 왔고, 그 희생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우지 않았는가 말이다.
구미갑 정치는 한동안 출렁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노정시킨 소지역주의를 치유하기가 간단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00년 김윤환, 박세직, 박재홍으로 요약되는 구미현대정치사 1기를 마무리한 김성조 국회의원의 어려웠던 시절을 익히 기억하고 있다. 허주를 누르고 국회에 입성할 당시 41세의 젊은 국회의원 김성조를 바라보는 2000년 초반의 구미갑구 현실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김의원은 지방대 출신, 지방의원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여의도 연구소장, 정책위 위원장,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라는 소위 수뇌부의 반열에까지 올라섰다.
김의원의 이처럼 보기드문 정치 이력을 쌓기까지는 겸손함과 성실함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치 시대는 이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의원이 유종의 미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훗날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필자는 다시 한번 일부의 오류가 없지 않았으나, 구미현대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또 결국에는 새로운 결단을 내린 김성조 의원의 가치관을 일정부분 평가하고 싶다.
아울러 새롭게 정치무대로 입성한 심학봉 국회의원 당선자는 선거기간 중 불거진 소지역주의 논란을 겸손지덕의 지혜로 극복하고, 구미시민들이 애타하는 공단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갈증을 서둘러 해갈시켜 주어야 한다.
특히 3선의 김태환 의원은 구미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구미현대 정치사의 현실이다. 따라서 김의원은 " 추진력 있게 일은 잘하지만 화합과 지도력이 아쉽다"는 항간의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이래야만 구미현대 정치사를 빛낸 인물로 후세는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선의 남유진 시장은 더욱 더 어깨가 무겁다. 그 만큼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를 한 몸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화합을 이끌어내야 하고, 구미를 먹여살릴 신성장 동력을 '위대한 구미, 찬란한 구미'라는 곶간에 비축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구미가 한국을 먹여살리는 곶간이 되도록 하기 위한 지혜와 슬기를 실천을 통해 보여주어야만 한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거니와 새롭게 구미현대 정치사의 중심으로 입장한 심학봉 국회의원 당선자의 앞날은 험난하기 이를데 없다. 벼랑에 선 구미공단 경제와 지역 경제, 이를 견인할 계층간▪세대간 ▪지역간 화합 유도와 실천, 일부 중앙정치인들의 비극적 종말을 초래하기까지 한 공정한 지방의원 공천제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심 당선자는 논공행상의 잘못된 정치관행을 슬기롭게 물리쳐야 하고, 능력있고 참신한 인물들이 지방정치를 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만 심 당선자의 정치 미래가 있다. 특히 지방의원 공천제의 자잘못이 자신의 정치 운명과 직결된다는 점을 유념하고 또 유념해야만 한다.
정신이 맑으면 천리를 볼 수 있고, 정신이 흐리면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말이 있다. 특히 제3기의 새로운 구미현대 정치사를 이끌 주역들은 "술에 취해서 행하는 정치문화'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