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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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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에 비롯된 자생적(自生的) 주사파(主思派)는 과거 좌익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가운데 독자적으로 출발했다. 80년대 중반 한국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뤄 북한을 압도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하면서 정통성을 상실한 전두환 군부정권에 대한 저항적인 분위기가 대학가에 팽배했다. 서울대 법대출신인 김영환이가 ‘구국의 소리’방송과 도서관에 있던 주체사상 비판서적을 통해 이론을 정립해 나갔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민족해방(NL: National Liberation)의 이론이 탄생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식민지인 한국사회는 1차적으로 미국을 축출하는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민주화 투쟁과 통일운동은 반미운동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대중적 방도를 제시하기도 해 학생운동 전반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1961년 중국과 소련 이념논쟁이 본격화되자, 김일성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펼치면서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라는 4대 정책적 노선의 주체 사상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북한에 ‘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북한은 주체 사상을 더 정교하게 정리해 “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 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명제를 붙였다. 따라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특히 당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철학적 체계를 세운 사람은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이었던 황장엽 이었다. 그는 주체사상을 새로운 인본주의에 기초한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즉,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자주성. 창조성. 사회적 협조성으로 정의하고, 이에 기초해 세계관. 사회 역사관. 인생관의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와함께 김정일은 황장엽이 정립한 이론을 자신의 직계 선전부문 일꾼들을 동원해 주요 구성부분을 선별 재구성하고, 북한의 전체주의 수령 독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김일성의 신격화. 절대화한 북한식 수령론 등을 합성해 잡탕을 만들어 놓고 김일성이 창시했다고 주장하면서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이다.
물론 미루어보면 주체사상 이론에 흠결은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또 1980년 독재와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한 운동권들이 북한에 빠진 것은 북한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은 북한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사상 강국을 표방하며 대외적으로 수령과 당 인민이 일심 단결해 미국에 맞서는 북한의 모습에 대해 매력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는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에 화두를 던지는 주체사상에 더 가까이 다가 설수 있었던 것이다.
자생적 주사파의 원조 김영환은 1991년 강화도 해안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반 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잠입했다. 평양에서 정식으로 조선노동당에 입당을 한 후 17일 간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주체사상 연구학자들과 두 차례 토론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묘향산에 있는 김일성의 별장으로 가서 두 차례 면담을 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그는 서울대 구내에서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위해 ‘민족 민주 혁명당<민혁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김영환은 북한을 방문한 뒤 그 실상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즉 북한에서는 관료주의가 매우 심각했으며, 주체사상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들과 토론에서도 학자들은 똑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 자기주장이 결여돼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평양시내에 나가 시민들과 대화를 시도해도 안내원의 제지를 받았고, 시민들의 표정도 굳고 어두웠다. 죽은 사회를 본 것이다. 민족해방 운동의 꿈을 안고 가서 본 북한의 실상은 주체사상을 갖고 인민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1997년 7월 종로의 한 레스토랑에서 민혁당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2:1 다수로 해체를 결의한 후 주체사상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것이 종북 좌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주체사상의 실상이다.
진정한 진보는 현존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구조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사회모순을 변혁시켜 새롭게 나아가려는 것을 말한다. 경제적으로는 분배를 중요시하고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와 농민의 평등에 관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진보의 탈을 쓴 종북(從北) 주사파는 북한의 3대에 걸친 봉건적 권력세습. UN에서 정한 최악의 인권탄압국가의 문제. 개인숭배. 핵 실험. 6.25남침에 대한 입장.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애국가마저 부르기를 거부하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집단인 것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을 적화 통일하기 위해 조직된 최초의 지하당인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 출신으로 1999년 사건 연루자들이 줄줄이 검거됐을 당시 붙잡히지 않고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구속, 처벌받은 지하당 출신 종북 인사가 대한민국의 권력의 심장부 국회에 입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민의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집단의 낡아빠진 주체사상에 목숨을 거는 종북 주의자는 “북한 문제는 내재적(內在的)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궤변을 접고 진정한 진보로 되돌아가기 바란다.
민족 해방이라는 궤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배고픔으로부터의 해방, 인권탄압으로부터의 해방, 독재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보수로 돌아갑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는 아니지요.
7인회가 왠말이고 전두환 사열이 왠말입니까.
진보 보수 모두가 제 자리를 찾고 혁신해야 합니다.
06/11 14:45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