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부의 대물림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시민의식이 성숙하고 사회 제도들이 완비되면서 차츰 변화가 생겨났다. 상속세법은 보다 엄격해 졌고, 공직에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부의 대물림은 중대한 결격사유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긍정적인 신호이며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다.
부가 세습되는 사회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부의 사회 환원 전통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곳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부를 자식에게 대물림하기보다 가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방식을 취한다. 당장에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는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잘 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부자 워런 버핏은 그나마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조차 만들지 않고 빌 게이츠 재단에 전 재산을 몽땅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국 부자들의 사회 환원 전통은 록펠러에서부터 정립됐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록펠러는 독점을 통한 기업 확장으로 갑부가 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기업경영에서 있어서는 솔직히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그가 훌륭한 부자로 기억되는 건 재산 환원의 전통을 세웠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록펠러 재단 만큼이나 유명한 카네기 재단 역시 그 주인공 철강왕 카네기는 교육과 국제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사회 환원을 통해 전 세계의 귀감이 되었다.
부자들이 사회로부터 모은 재산을 다시금 사회에 환원하는 데서 자본주의의 한계가 보완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부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 환원을 실천할 때 이를 통해 양극화가 고착화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계층 간의 갈등도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부자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에 한 연구소가 내놓은 한국 부자들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았는데, 우리나라 부자들이 부자가 되기까지는 부동산 재테크의 영향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땀 흘려 일을 해 부를 일궈낸 부자들보다는 1988년 전후로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졸지에 부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부자들의 소명감이 떨어지고 재산의 사회 환원 역시 소원한 일이 되고 있다.
조사결과를 보면, 1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은 최근 2년 연속 20%대가 증가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50대 이상의 경우, 부모 지원으로 부자가 된 경우가 8.5%에 그친 반면, 49세 이하는 부모덕에 재산을 축적한 비율이 23.4%에 달했다. 즉 아랫세대로 내려갈수록 본인의 노력보다는 상속이나 증여 등을 통해 부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2004년 정부는 이와 같은 부자들의 편법 증여를 막기 위해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표 부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들은 이내 이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특수 관계의 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라는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상속증여세를 회피하는 법을 찾아낸 것이다.
최근 정부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과세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국세청, 공정위 등과 함께 고강도 칼날을 겨눈 것이다. 당연히 기업들의 반발은 크다. 일감 몰아주기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며, 규모의 경제를 위한 효율성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학계의 비판도 만만치 않고 위헌 가능성이 적지 않아 현실화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차제에 우리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비단 천문학적 부를 축적한 재벌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를 바라는 정서가 강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이 아닌, 부의 사회 환원이 갖는 무한한 중요성을 헤아린다면 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선택받은 삶을 살아온 부자들이 사회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깨닫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도 록펠러와 카네기뿐 아니라 이름 없는 훌륭한 부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