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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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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부인이 아파트 상가에 작은 샌드위치 전문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이었다.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축하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유명 은행에 취직해 20여년간 근속을 하고, 부지점장까지 승진했지만, 2009년 희망퇴직을 했다. 위로금과 2년치 연봉을 추가로 지급하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지점장의 숫자가 지점 수의 두 배에 이르렀고, 임원 승진은 고사하고 지점장 승진조차 막막한 상황이라 아직 다른 일을 시작할 여력이 있을 때 퇴직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친구는 퇴직금에 아파트 담보 대출금을 보태 프랜차이즈 고기집을 차렸다. 넓은 홀에 직원도 대여섯명을 거느린 폼나는 사장님이 된 것이다. 유동인구도 많은 자리라 어쩌면 은행 부지점장보다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6개월 후 여지없이 무너졌다. 6개월 내내 적자에 시달리다 친구는 결국 가게를 그만두고 말았다. 비싼 월세나 가맹점비, 직원들 월급 등 모든 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은행에서 보낸 20여년의 경험은 장사를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간단한 교육만 받았을 뿐, 창업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다음엔 동네 치킨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창업 역시 실패였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치킨집들과 경쟁을 하다보니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고, 이로인한 출혈을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래저래 날린 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친구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휴일도 없이 가게에 매달리고 또한 종업원을 구하기도 어렵고, 종업원 역시 비정규직이라 갑자기 안 나오는 날도 많아 마음고생도 심하였고 피로가 누적되어 결국 간경화 판정까지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친구를 대신해 평생을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그의 아내가 이제 생활전선에 나섰다. 필자는 이전엔 열심히 고기를 먹으러 다녔고, 그 다음엔 치킨, 이제는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야 한다. 필자가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현금도 챙겨야 할 것 같다. 샌드위치 하나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카드 수수료까지 물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에게 친구의 이야기는 남의 얘기같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금융권과 산업계에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베이비부머들의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에 있을 때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가 않다. 대부분이 자영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자영업이 생각처럼 쉬울 리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월 528만여명이던 자영업자 수가 작년 9월에는 569만여명으로 40만명이 늘었다. 반면 상반기동안 7만여개의 자영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창업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지만, 낙오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다.
현재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2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 중 연매출 4,800만원 이하의 간이과세자가 전체의 80%에 달한다고 하고, 자영업자의 4분의 1은 월 120만원의 소득도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사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지 못해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80년대 산업근대화의 역군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이 지금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문제를 이대로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노동자는 그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있고, 또한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대변 단체가 있으나 560만 자영업자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도 없을뿐더러, 먹고 살기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들의 처지가 남의 일이 아닌 필자만의 생각일까? 소상공인들, 또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을 정부나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