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대학교수들이 올 한 해를 함축하는 의미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을 꼽았다. ‘온 세상이 흐리지만 나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지만 나 홀로 깨어 있다.’는 뜻이다.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가 출처다.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擧世皆濁 我獨凊 衆人皆醉 我獨醒)’에서 따 온 것이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의 총애를 받아 왔다. 하지만 상관대부 근상의 시기로 왕이 자신을 멀리하자 아픈 마음을 달래며 깊은 사색에 잠겨‘이소(離騷/걱정스런 일을 만난다는 뜻임)’를 지었다. 왕은 충신과 그렇지 않은 신하를 구분 할 줄 몰랐다. 안으로는 후궁에게 미혹되고 안팎으로 간신의 말만 들었다. 결국 싸움마다 패하면서 여섯 개 땅을 잃고, 진나라에서 객사를 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다.
어느날 굴원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며 어부가를 읊조렸다. 얼굴빛이 꾀죄죄하고 모습마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윈 굴원에게 다가온 어부가 물었다.
“당신은 굴원이 아닙니까?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어부가 다시 물었다.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쫒기는 일을 당하셨습니까?” 굴원이 답했다.
“내가 듣건 데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났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이런 말을 남긴 굴원은 큰 돌덩이를 끌어안은 채 멱라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쳤다.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난 그는 연꽃처럼 깨끗해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지조가 해와 달, 그 빛과 다툴만하다고 했다.
올해 벽두부터 여야는 모두 당명을 바꿨다. 새로움과 통합 이미지를 앞세운 양당은 총선 고지를 향해 빨간 색과 노란 색 대결을 가열차게 벌였다. 이념으로 나누어진 두 진영은 서로 승리를 장담하며 맞붙었으나 막말에 힘입어 승리의 깃발은 새누리당의 몫이 됐다.
뒤이어 빅 매치가 벌어졌다. 처음에 양당의 대결 화두는 박정희 ,노무현 시대로의 회귀냐 아니면 미래로 나아가느냐 였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냐, 새로운 변화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선은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포풀리즘과 흑색선전, 여론조작 등이 가세하면서 점입가경으로 급변했다.
마지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주장한 진보성향 대통령 후보 발언이었다. 이 장면을 본 보수층은 분노했고 결집했다. 세대간 대결의 단초가 된 것이다. 결국 유권자의 75.8%를 투표장으로 몰려들게 하면서 대선 판은 후끈 달아 올랐다.
대한민국의 2012년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세대와 지역으로 나누어져 선거에 매몰된 해였다. 모두가 자기 진영의 이념에 갇혀 상대의 말에 귀를 틀어막았다. 더군다나 서로를 쳐다보지 조차 않으려고 했다. 모두가 취해 있었던 것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교수들이 맹 활약을 했다.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방영되는 토론장에 나와서 열변을 토했는가 하면 지지선언이란 미명 아래 미래 권력에 줄을 서기까지 했다.
시중의 필부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와 침을 튀겨가며 격론을 벌였는가 하면 뜻이 같은 이들끼리는 건배를 하며 마음을 나눴다.
총선, 대선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선거의 탁류가 흐르면 그 흐름에 따라야 한다. 모두가 취해 있다면 함께 취해 있어야 한다. 홀로 고결함은 세상이 알아주질 않기 때문이다. 이제 판은 끝났다. 모두들 훌훌 털고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 2012년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