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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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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추사 김정희선생은 현재 전남 순천 선암사에 있는 해붕대사의 진영에 대한 찬문에 의하면 1856년에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연대가 이렇게 뚜렷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찬문 끝에 칠십일과(七十一果)라는 호를 썼는데, 이것은 평생 수 십 개의 호를 썼던 추사가 71살인 그해에 사용한 것으로 과천에 살았기 때문에 과천에 사는 71살의 늙은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자호했다. 그가 이 해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호이기도 하다. 그해는 해붕대사가 입적한 지 꼭 30년 되는 때다. 30년이라는 숫자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였는지, 혹은 그냥 우연하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꼭 한 세대가 지나서 제자에 의해 스승의 진영이 그려진 것이 예사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김정희와 관련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때까지 살아 있던 해붕대사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자기들의 스승인 해붕대사의 진영을 조성하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거기에 들어갈 찬문의 적임자로 김정희를 염두에 두었을 것 같다. 찬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그와 해붕대사는 평소에 두터운 친분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는 김정희도 연로하여 얼마나 더 건강을 유지할지 몰랐을 터이므로 해붕대사의 제자들은 서로 의논하여 서둘러 진영을 그린 다음 김정희에게 찾아가 진영을 보인 다음 찬문도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하는 기록이다.
-해붕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
해붕(海鵬)의 공(空)이여!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요, 바로 제법의 공상(空相)으로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사람이 혹은 그를 공종(空宗)이라 이르는데 그는 아니니 종에 있지 아니하고, 또 혹은 진공(眞空)이라 이르는데 그럴 것도 같으나, 나는 또 진이 그 공을 누(累)할까 두려우니 또 붕의 공은 아니다.
붕의 공은 바로 붕의 공이니 공이 대각(大覺)을 낳는다는 것은 바로 붕의 어긋난 풀이이며 붕의 공이 홀로 나아가고, 홀로 통하는 것은 또 착해(錯解) 속에 있는 것이다. 당시에 일암(一庵)ㆍ율봉(栗峯)ㆍ화악(華嶽)ㆍ기암(畸庵)이 각자의 견식을 가져 붕과 더불어 서로 오르내리나, 그 공을 통하는 데에는 다 붕의 공에 뒤질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선(禪)은 바로 대위(大潙)라면 시(詩)는 바로 박(朴)일진대 대당(大唐)의 천자와 단지 세 사람일레.' 하였으니 붕은 바로 대당 천자인 것이다. 상기도 기억되는 것은 붕은 눈이 가늘고 점 찍혀 파란 동자가 사람을 쏘니 비록 불이 꺼지고 재가 차도 파란 눈동자는 오히려 남았을 것이다. 이를 본 30년 후에는 붓을 놓고 껄껄대어 크게 웃으며 삼각 도봉(道峯)의 사이와 같이 역력(歷歷)하리다.
1856년(철종 7)에 과천에 사는 71세의 늙은이 김정희(金正喜)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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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붕대사의 진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