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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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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주나라는 지배력을 잃자 천자 권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개 소국으로 전락했고, 힘의 공백이 생기자 그 틈을 이용해 제후국들이 난립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또 이전 제후계급이나 기득권층은 쇠퇴하고 새로운 사회 계층인 사(士)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대정신은 존왕양이(尊王攘夷)였다. 즉 천자는 존중하면서 오랑캐가 침입할 경우 한마음이 되어 물리친다는 의미였다.
BC 403년 경,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로 분할해 제후국으로 독립하면서 중원에는 진(秦) 초(楚) 연(燕) 제(薺)나라와 함께 전국 7웅만 남았다. 당시 각 국 군주들은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면서 부국강병을 위해 파격적인 인재등용을 펼쳤다. 비로소 명분은 버리고 실리만 찾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 당시 시대의 군주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영토를 넓혀갔다. 하지만 백성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나갔고 힘들어 했다. 탐욕과 혼란의 시기였다. 중원 땅이 이처럼 갈기갈기 찢긴 상황으로 치닫자 저마다 천하를 구할 방책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이 바로 제자백가들이었다.
자고나면 죽음과 직면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한 고뇌와 사유思惟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인물이 바로 유가의 공자와 순자, 도가의 노자와 장자, 묵가의 묵자, 법가의 상앙과 한비, 병가의 손자와 오기 등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제후들을 찾아 나라를 구할 방책을 제시하며 설득하고 나섰고, 이 영향으로 수많은 철학이 탄생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이들 외에도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각자 현실 문제에 대해 마련한 해결책을 앞세우고 각국의 군주들을 찾아다녔다. 바로 책사(策士) 또는 유세객(遊說客)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군주에게 추천될 기회를 얻기 위해 재산가나 유력 인사 집에 묵으면서 밥을 얻어먹고 지냈던 유세객들은 그래서 식객(食客)으로 불렸다. 상앙, 장의, 범수, 이사 등 당시 거물 정치인 대부분이 이러한 식객 출신이었다.
당시 식객을 많이 거느린 유력 인사들은 실로 왕에 버금가는 지위와 권세를 누렸다. 특히 능력 있는 식객을 둔 인사들의 정치적 지위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식객들은 또 유사시 사병역할도 담당했다. 제나라 맹상군을 비롯한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 그리고 여불위 등은 3천 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갖가지 지모와 책략이 나오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것이다.
유세객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소진이었다. 그는 당시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방책으로 합종책(合縱策)을 주장했다. 6개 나라가 함께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서야 한다고 설득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소진은 6국의 군주들이 모여 피로써 맹약을 맺는 회맹을 이끌어냈고, 각국의 군주들은 소진을 6국 재상으로 임명한 뒤 상국인장(相國印章)을 주었다. 합종책은 이처럼 일정한 기간과 범위에서는 어느 정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다.
반면 진왕은 6국이 합종 맹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엇다. 전국시대 소진의 합종책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진나라가 꿈꾸던 천하통일의 꿈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합종책에 맞서 진나라는 장의의 연횡책(連橫策)을 채택했다. 이를 계기로 진나라는 6국이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어 화친을 해야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 나갔다. 6국 연합체 합종책을 깨뜨리는 전술을 펴고 나선 것이다. 합종책과 연횡책은 당시 시대의 담론일 만큼 유명했다.
흥미를 끄는 당시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위나라 사람인 장의는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세술을 배웠다. 진나라에 등용되기 전 장의는 어느 날 도둑으로 몰려 수백 번 매질을 당한 뒤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글을 익혀 유세를 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그러자 장의는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혓바닥이 아직 붙어 있는지 보아 주시오.”
장의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혀는 붙어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
유세객 밑천은 말이기 때문에 세치 혀만 붙어 있어도 됐다. 군주를 설득하고, 자신의 주장이 채택돼 등용이 되면 모든 걸 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력이 바뀌는 선거 때가 되면 수많은 책사 멘토 등 인재가 몰려든다. 때론 싱크 탱크라고 불리는 집단도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세상을 구할 방책을 제시하며 권력자에 다가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사상과 철학을 제시하고, 정치 경제 사회문제등에 걸쳐 해법을 제시한다. 이는 공약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세상에 나오기도 한다.
메스컴에는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대학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화려한 언변과 소신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신문지상은 논객을 자처하는 이들이 정국을 진단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모두가 국민을 상대로 유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이 도래한 것이다.
유세객 또는 책사들의 공통점은 우선 박학다식한 역사적 사실에 정통해 세상을 손바닥 보듯 한다는 점이다. 독특한 견해를 갖고 남이 미처 보지 못 한 것을 심오하게 분석해 세상을 설득한다. 그리고 담력과 기백을 유지해 달변을 하는 특징이 있다. 지식이 탁월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눈부신 활약을 한 유세객은 정치권에 발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