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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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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비가 온 뒤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뒤를 받치고 오색의 찬란한 무지개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무지개가 나타나도 그렇게 선명한 빛깔을 지닌 무지개는 아니다. 어릴적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라 하여 일곱 가지 색(서양문화의 영향)으로 여겼는데, 우리나라에선 무지개 색을 가장 길(吉)한 색(오색, 오방색)으로 보았다. 그나저나 그 아름다운 무지개를 잘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무지개는 “무지”와 “개”의 합성어이다. 무지개는 대기 중의 물방울에 햇빛이 반사되어 생기게 된다. 따라서 무지개는 수광(水光)의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옛 신화에 무지개는 천상 세계에서 지상 세계로 통하는 다리로, 천인이나 선녀의 통로로 인식하였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진지왕이 죽어서 도화녀(桃花女)의 방에 와 유숙하는 7일 간에 지붕 위를 덮고 있던 오색구름은, 죽은 왕이 천상인이 되어 천상을 오르내릴 때 거쳐 간 구름다리(雲橋)이거나 무지개다리(虹橋)로 보인다.
민가에 내려오는 속신에 의하면 무지개는 홍수를 예언하는 현상이다. “서쪽에 무지개가 서면 강가에 소를 매지 마라”는 속담이 이를 뒷받침 한다.
선녀들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면,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목욕한다고 한다. 무지개는 반대편에 나타나기 때문에, 우후에 내려오는 선녀는 저녁 무지개가 동쪽에 나타나므로 동쪽 물로 목욕을 하는 셈이 된다. 동쪽에 무지개가 생기면 날씨가 좋다는 경험과, 동쪽의 물은 예부터 신화소(神話素)로 활용된 것과 더불어, 생명과 새벽의 의미를 지닌 것이 어우러져 생긴 이야기이다.
풍습으로 무지개를 예부터 오색이라고 말해왔는데(서양에선 무지개를 7가지 색으로 보았다), 동심의 기쁨을 표현 할 때에 자주 쓰였다.(어린이들 돌잔치 때 입는 옷과 때때옷 등이 오색이다) 또 무지개를 신성하게 여겼으므로, 무지개를 보고 손가락질하면 생손 앓는다고 하는 등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시경(詩經)에, 동쪽에 해가 찬란할지라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 법이라 하였다. 무지개라는 뜻의 체동(蝃蝀)의 체 “蝃”가 임금 제(帝)와 중국의 음이 같아서 체(螮)를 쓰기도 하는데, 이 제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때의 제는 하느님인 상제(上帝)를 가리킨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움, 태양의 반대편에 선 상대 위치, 또 임금의 상대역인 백성, 하느님 도는 임금 제와 음이 같다는 데서 오는 조심스러움과 예의를 담고 있어서 손가락질을 금지 하는 것이다. 곧 하늘 숭배사상(敬天思想)을 담고 있다.
무지개는 그 빛깔이 현란하여 사람의 눈을 현혹 시키는 것으로 인식하여 천지의 음기(淫氣)로 보기도 했다.
“용재총화”에 “무지개 바위 머리의 조그만 우물에서 강 속으로 들어가니, 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모두 노랗게 되고 비린내 나는 기(氣)가 일어나매, 사람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다. 참으로 천지의 음기라고 한 옛 사람의 말이 헛되지 않다”고 하였다.
호암 대사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100일 기도를 하였지만 헛되자,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고 하였다.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였다. 대사는 자기를 구 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형 다리를 세웠다. 이것이 전남 승주군의 선암사(仙巖寺) 승선교(昇仙橋)이다.
그리고 전남 고흥군 옥하리에는 무지개형 홍교(虹橋)가 있다. 이들 다리는 무지개를 지상에 재현시킨 것이며, 불교에서는 윤회(輪回)중에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무지개로 상징하였다.
무지개는 아름다우나, 태양과 흰 무지개의 만남은 비정상적인 것, 위험한 것을 상징한다. “신라 성덕왕 24년, 정월에는 흰 무지개가 나타났고, 3월에는 눈이 오고 4월에는 우박이 내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그 때의 국내 사정이 어려웠음을 알려 준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도 흰 무지개가 해를 꿰었다는 기록이 있다. 무지개는 태양 반대쪽에 나타남이 순리인데, 해 쪽에 나타나 해를 범함은 역리(逆理)로서 좋은 일이 아니다.
고려말 왜구를 토벌하던 이성계가 장단에 이르자,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 점쟁이는 승전을 예언했는데, 과연 승전했다. 이는 무지개가 감히 해를 이길 수 없듯이, 무지개 같은 하찮은 왜구가 고려를 이길 수 없음을 이른 말이다. 여기서 무지개는 서징(瑞徵)의 상징이다. 이것을 조선건국 서사시 ‘용비어천가’에서는 “내 백성 어여삐 여기사 장단(長湍)을 건너실 때, 흰 무지개 해에 끼이니다” 로 표현 하였다. 무지개는 시인들에게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노래하였다.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 섞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잦았으니 / 들을 때는 우뢰더니 보니 눈이로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예부터 무지개를 천궁(天弓),체동(螮蝀),홍예(虹霓)라고 하였다. 양 끝은 처지고 가운데가 무지개처럼 둥글며 치솟게 놓은 다리를 무지개다리(虹霓橋)라 한다. 또 문(門) 얼굴의 윗머리를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만든 문을 홍예문(虹霓門)이라 한다.
요즈음 무지개를 잘 볼 수 없는 것은 대기의 오염 탓이라 하겠지만. 그것 보다는 세상 사람들 인심이 그만큼 메말라 가고 있음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