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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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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시작된 노동자의 파업은 1988년 올림픽 때 일시 중단되었다가 1989년부터 2000년까지 다시 재현됐다. 노동자들이 연일 데모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산업은 마비됐고,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기업들은 국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동집약적 산업을 자동화로 전환해 나갔다.
이를 계기로 공단 입주업체들은 해외에 126개의 공장을 건설하면서 구미공단을 떠나갔다. 그러나 이처럼 긴박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미시와 공단본부는 아무런 대책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엘지 그룹과 삼성그룹은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 공장부지를 구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협조하는 곳이 없게 되자, 무산되는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실례로 1995년 하반기, 엘지 반도체가 공장 확장을 위해 2공단 부지 내에 원상보전지역을 해지해 이곳에 초긴급 공장을 건립하기 위해 구미시와 공단본부에 수차례 기업의 절박함을 건의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필자는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에게 협조를 부탁했고, 이 결과, 건설교통부가 속전속결로 현장을 답사하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탄력을 받은 1995년, 원상 보존지역 해지를 통해 엘지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구미시가 이를 지연시키면서 엘지 반도체 공장은 결국 구미 투자를 포기하고 청주로 떠나갔다.
차세대 전자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이 구미공단의 효자기업임을 절감한 필자는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사무실과 과천에 소재한 건교부 사무실을 수차례 방문, 엘지 반도체 원상보존지역 해지를 통해 구미전자공단 발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썩은 정치의 장난이 작용하면서 해지를 미루다가 1996년 총선 이후인 1997년에 원상보존지를 해지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었다.
이 뿐이 아니었다. 1997년 11월 말, 불어닥친 IMF 한파로 국가가 부도상태에 직면하자, 김대중 정부는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 기업과 기업의 빅딜을 통해 전자 산업의 핵인 엘지 반도체를 현대에게 넘겨 주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코메디였다. 이 결과 구미공단은 치명타를 입게 됐고, 이어 대우그룹이 부도처리되면서 대우전자, 오리온 전기 1,2,3 공장이 파산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엘지 반도체 확장을 위한 원상보존지역을 1996년 상반기에만 해지했더라도 엘지 반도체를 강제로 뺏어 현대 전자에 넘겨주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술이 부족한 엘지 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가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기업은 또 팔리면서 하이닉스 반도체로 추락해야만 했다. 지방자치 단체장과 정치꾼들의 야합의 원인이었다.
전자산업의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아날로그 디지털 브라운관 TV에서 브라운관 없는 LCD TV로 전환하기 위해 1995년 9월에는 엘지 디스플레이 1공장이 LCD 양산에 들어갔다. 이어 LCD 공장 부지 확보를 위해 서통공장 부지와 대화합섬 공장을 비싼 가격에 인수한 엘지 디스플레이는 공격적으로 투자에 집중하는 한편 2004년 8월에는 6공장 준공을 통해 LCD양산에 매진했다.
그러나 7,8세대 공장부장 부지 확보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엘지디스플레이로 하여금 경기도 파주에 투자를 결정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파주에 LCD 7공장 기공식을 하고, 이어 2005년 2월, 파주 전기초자 기공식을 할 때까지 구미시와 공단본부는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었고, 점차 시민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이 당시 관련 기관 단체의 해명 역시 코메디였다. 파주로 이전한 LCD 디스플레이 공장 지하수에 염분이 검출되면서 철판에 녹이 슬고, 중국에서 몰려드는 황사 때문에 제품 불량이 많아 구미 공장으로 다시 이전한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말도안되는 유언비어를 유포해 성난 민심을 거짓으로 잠 재우는 쇼까지 자행한 것이다.
유언비어는 얼마가지 않아 거짓으로 판명이 됐다. 현재 파주 LCD 공장 근무자 1만7천여명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이를 통해 파주시는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봉사단체가 아니다.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치밀한 계획과 기술개발, 자본을 적기에 집중 투자해 생산성 및 품질향상을 발판 삼아 세계 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곧 근로자의 복지 증진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정, 시민을 속이는 정치꾼들의 술수는 기업들을 여건이 더 좋은 도시로 빠져나가게 하고,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공정을 옮겨가게 하는 근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구미1공단 326만평을 유령 공단으로 방치시켜서는 안된다. 국가가 하루 속히 결단을 내린 가운데 새로운 생산기지로 변모시켜 나가야만 한다.
3공단에 있는 삼성전자 역시 구미에 연구 인력을 보강해 구미발전에 기여토록 하기 위해 거창한 기술 연구소 기공식을 해 놓고 예고조차 없이 철수 했다. 이에따라 기숙사 인원이 현격하게 줄면서 인동상권은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에 놓여 있다.
타 시도의 경우 공장 유치를 위해 기업의 요구사항을 신속히 수렴, 원상보전지를 공장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구미시와 공단본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97년 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은 서민과 근로자였다. 건설사 부도가 전국적인 상황으로 확산되면서 아파트 분양신청을 한 3천 500여 입주예정자들은 가정을 파산지경으로 이르게 하는 눈물겨운 고통을 겪었다.
사곡 보성, 오태 대동, 인동 청구, 삼우, 옥계 대백, 봉곡 도시 주택과 관련된 입주 예정자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이 과정에서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가.
필자는 구미시와 정치꾼들이 관망하고 있을 당시,서민들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와 정당을 수차례 방문해 서민과 근로자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설득해 극적으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떠나간 기업이 구미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있는 공장이라도 중국, 인도, 베트남과 수도권으로 이전하지 못하도록 그룹총수들을 만나 간곡한 협조를 요청하는 등의 삼고초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또 구미출신 저명인사를 총 동원해 구미공단 살리기에 올인하고, 떠나는 구미에서 돌아오는 구미로 전환될 수 있도록 투명한 행정, 효율성이 높은 행정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불필요한 행사를 억제하고 구미공단 활성화를 위해 시민전체가 동참하는 계기를 서둘러 마련한 가운데 침몰하는 공단을 살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