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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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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겸재(謙齋) 정선(鄭歚)은 <금강전도(金剛全圖)>를 그리고 화제시를 기록했다. 그가 필법이 무르익은 1734년(영조 10) 만 58세 때 만폭동(萬瀑洞)을 중심으로 금강내산(金剛內山)의 전경을 그린 것이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 금강전도 겸재(金剛全圖謙齋)라는 관서(款署)와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있고, 오른쪽에는 반원형을 이룬 7언시와 그 중간에 갑인동제(甲寅冬題)라는 연기(年紀)가 적혀 있다. 왼편의 윤택한 토산(土山)속에 장안사(長安寺) · 표훈사(表訓寺) · 정양사(正陽寺) 등 내금강의 명찰들을 배치했고, 오른쪽 화면에는 멀리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눈 덮인 암산들을 표현하고 있다.
암산에 보이는 수직준(垂直皴)은 강하고 활달하며 예리한 데 반해 토산에 보이는 준법과 미점(米點)들은 습윤하고 부드럽다. 조감도적(鳥瞰圖的) 전경포착과 원형구도(圓形構圖), 토산과 암산의 대조적인 표현과 배치, 농묵(濃墨)의 나무 표현과 암산의 골기(骨氣)를 강조해주는 담채(淡彩) 효과 등은 정선진경화법의 진수를 압축해놓은 것으로 그의 금강산 표현양식과 화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회화세계는 18세기 화단을 크게 자극하여 진경산수의 유행을 가져왔고, 많은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따르게 되어 겸재파(謙齋派) 또는 정선파(鄭歚派)로 불리는 일파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그림의 화제시(畵題詩)는 아래와 같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에 화제시를 씀
萬二千峰皆骨山, 何人用意寫眞顔, 衆香浮動扶桑外, 積氣雄蟠世界間.
幾朶芙蓉揚素彩, 半林松栢隱玄關, 縱令脚踏須今遍, 爭似枕邊看不慳.
만이천봉 개골산, 누가 참모습 그릴런가? 뭇 향기 동해 밖에 떠오르고, 쌓인 기운 세계에 서려 있네. 몇 송이 연꽃 해맑은 자태 드러내고, 솔과 잣나무 숲에 절간일랑 가려 있네. 비록 걸어서 이제 꼭 찾아간다 해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실컷 보느니만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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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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