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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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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뒷 동산에 오르기를 벌써 반년이 흘렀습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울울창창이란 말로 풀어졌는데 어느새 오 헨리와 마지막 잎새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얕은 산등성이를 조용히,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가리라고 시작했다가 이제는 50년전 초등(국민)학교 시절 배웠던 맨손(재건)체조니, 제자리 뛰기를 하며 땀을 청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트막하나 산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립니다. 건강은 아침운동이라면서요
매일 20분을 넘기기가 쉽지않습니다. 가뿐 숨을 몰아쉴 때 마다 마라톤으로 전국을(심지어 전 지구촌을) 달리는 스님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부처님의 공력이나 신심이 아니고는 어찌 가능할까싶기도 하구요.
자신의 건강이나 취미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활복지시설 모자원의 설립을 위해 강변하고 모금을 위해 저리 몸을 던지고 수행하듯 달리고 또 달리고 있습니다. 목적을 향한 그의 집념이나 노력이 여느 불자의 수도나 수행과는 차이를 둘 만큼 크게 보입니다.
책임자로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죽향쉼터)는 거주기간이 최대한 2년이어서 퇴소후 후 대책으로 새로운 모자원의 건립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시비를 마련해 주지않아 신축이 무산 됨으로 인해 몸으로 부딫쳐(울트라 마라톤) 정당성을 말하고, 후원을 청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면서 정책 당국자(시의 책임자)의 지역복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말과 글로써 꾸짖기도 하고 하여 같은 의견을 가진 분들과 더불어 구미시의 복지정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질타하기를 지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자원의 신설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은 ‘구미시의 모자원에 대한 주장은 매우 타당하며 복지차원에서의 생산성을 산정해보면 매우 낮아 그 존립에 문제점이 1990년대 이후 계속 제기’되어 온 것이라 하여 스님의 의견과는 다른 학문적 견해를 개진하고 있습니다. (경북대학교 사회복지과 L 교수)
또 구미시는 ‘죽향쉼터에서 2년 만기 퇴소 인원은 설립(2008년)이후 전체 119명중 3명(2.5%)’에 불과하고, (그들에 대한) 국가정책적, 혹은 지역복지의 정책방향은 ‘전세금 지원 등으로 집단시설이 아닌 개별 자립지원’이며 벌써 3명중 1명이 자립지원 혜택을 받고 2명만이 칠곡에 있는 모자원에 입소‘하였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활시설의 신설로 인한 집단 수용이 아닌 자립의지로 생활인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동시에 여성가족부는 ‘사회복지 시설 운영의 기본원칙은 탈 시설화이고 기 신고된 모자원이외 추가 신축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재 입소율 저조로 입소율 80%이하 1년이상 지속시 직원 감소해야 하는 패널티 운영 중이어서 생활시설 신축시 운영비 등 영구적으로 발생하는 비용부담이 있으므로 지역적 여건이나 수요도 등을 정확히 전망하여 검토해야 할 것’이랍니다.(여성가족부 가족지원과 안석규 주무관)
다시 말해서 생활시설에 대해서는 국가정책도, 학문적인 결론 모두가 고비용의 낙인효과까지 염려되는 시설의 신축은 정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구미시 복지과의 모자원 신축에 대한 불가방침은 옳은 정책적 선택이며 학문적인 판단이라는 것이지요.
몇 년 전인가요. 스님이 대둔사에서 같이살던 초등학생들을 교회 성탄 전야제에 데리고 와서 선물을 주고받고, 기쁨을 나누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정부나 어느 개인의 도움을 바라지않고 또 칭찬을 위해 선행을 파는 사람이 아닌 스님을 기억합니다.
아마 비록 소수의 모자가족이라도 길가에 버려지는 모습이 안타까와 혼자의 힘으로, 정부의 지원이나 보조를 바라지않고 묵묵히 자선의 길을 가는 수행을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진 분들이 악용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어쩌면 정부 보조금을 주는 것이 스님의 수행에 누를 끼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한 마디로 묶어 보았습니다.
구미시의 결단은 바른 정책적 선택이라는 점과, 달리며 모금하여 개인적으로 시설을 만들고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한 종교인이며 사회복지인의 단선적인 자선행위일 것입니다.
모두가 같이 잘사는 세상(달)을 바라는 것이 구미시 정책 책임자나 스님 뿐 아니라 복지가족 모두가 바라는 일이라면 방법이나 견해의 차이(달을 가리키는 손)로 갈등하고 비난하면서 이를 확대하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201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