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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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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권력은 없다. 유한하다. 그래서 권불 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질 않았던가.
지난 12월 28일 새누리당 심학봉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구미갑이 주요 당직자 임명식 수여식을 가졌다. 2012년 4월 총선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심의원은 1년반 넘게 정치적 생존권 사수를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기우뚱하면 낭떠러지인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던 그 기간 동안 심의원은 인간세계의 비열함과 무정함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관련 사안으로 기소돼 1백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하고 있다. 1심 결과 벌금 3백만원 선고는 심의원에게 충격을 주었고, 항소 역시 기각이었다. 기각 즉시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 역시 기각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일반적인 시각이었고, 이러한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10월 재보선은 기정사실화 됐다.
재보선을 겨냥한 많은 인사들이 출판기념회 형식을 빌어 출마선언을 했다. 이 상황 속에서 구미갑 정치권은 요동을 쳤다. 총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심의원의 상대진영은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심지어 심의원측을 옹호해 온 일부 인사들 역시 말을 바꿔타기 위해 안장을 내려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 속에서도 심의원과 함께 오로지 외나무 다리를 함께 걸어간 이들도 있었다. 그 길의 끝자락이 낭떠러지일 수도 있다는 예고된 절망의 세계일 수도 있었으나 그 일부 인사들은 그 길을 지켰고, 때로는 휘청거리는 심의원을 부둥켜 안았다.
그 세월이 1년 반이었다.
이러한 와중 속에서 2013년 11월 14일 심의원은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이 무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실상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상황의 역전이었고, 그 정도는 해일이었다. 견고했던 상대진영의 큰크리트는 쉽게 무너져 내렸고, 해일이 몰아치는 진영을 빠져나온 일부 정치권들은 해일이 빠져나간 심의원 진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정치무상, 인생 무상이었다.
모닥불을 피우면서 음지의 추위를 지켜낸 심의원측 인사들과 양지가 음지로 바뀌자 울타리를 빠져나온 인사들은 잠시 얼굴을 붉혔지만 결국엔 내민 손을 받아들였다.
그 상황들이 지난 해 12월 28일 주요 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을 통해 모양새를 드러냈다.모토는 바로 화합과 단결이었다. 이들은 외쳤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6▪4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자고 외치고 또 외쳤다. 하지만 일치단결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메아리 속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길재의 삶을 논하는 이도 있고, 반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이도 있다. 조선이 건국된 후인 1400년(정종 2년), 친하게 지내던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면서 거절하고 고향인 선산으로 낙향해 후배 양성에 힘써온 길재였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던 회고사가 면면에 흐르고 있는 구미 산야가 아니던가. 물론 이러한 가치관이 옳다고마는 할 수 없다. 고려와 조선은 나라의 주인이 절대왕조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메아리 속에는 요즘 한창 유행의 물결을 타고 있는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라는 노랫소리도 들려온다.
벌은 꽃을 따라 움직인다. 회양목이 싱싱한 꽃잎을 풀어올리기 시작하면 벌은 모여들어 떼를 이룬다. 하지만 꽃잎이 시들기 시작하면 날아들었던 벌떼들은 등을 돌린다. 그래서 권불십이요, 화무십일홍이다. 그래서 꽃을 피울수 없는 고목은 늘 외롭다.
회양목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꽃잎을 풀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야 하고, 알맞게 비도 내려야 한다. 여기에다 긴 겨울을 인내한 삶의 투지가 어우러질 때 꽃은 피게 된다. 정치세계에서 그만큼 여론이 중하다는 얘기다.
여론은 나무의 의지가 아닌 사회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물과 기름이 뒤섞이면 화합은 기대할 수 없다. 형식이 화합을 내걸었지만 강물 속에 기름이 떠 다닌다면 양질의 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강물은 식수가 아닌 폐수가 된다. 여론이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꽃이 질때 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을 안타까워 할 일도, 꽃을 피울 때 벌들이 몰려온다고 해서 황홀해 할 일만도 아니다. 일희일비 해서는 안된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한 꽃은 지고 다시 피기 때문이다.고목이 된다고 해서 서러워할 일만도 아니다. 모양새가 좋고 년령이 많은 나무는 보호수가 되기 때문이다.
3선의 김태환 국회의원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당시인 17대 총선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1년여 동안 가슴 앓이를 해야 했고, 18대 총선에서는 낙천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김의원을 따르던 지역정치인의 태반은 한때 곁을 떠났다. 심지어 김의원이 준 공천권에 힘입어 지역 정치권에 진입한 일부 인사들이 국회의원 도전장까지 냈으니 만시지탄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의 김의원은 건재하다. 몇 안되는 정치인사들이 일관되게 운명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긴 정치인이 되려면 군중과 민중의 섭리를 체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군중은 의식없이 움직이는 부류이고, 민중은 뚜렷한 가치관과 철학을 갖고 움직인다.
심의원은 스스로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가 군중적인지, 민중적인지를 간파해야 한다. 꽃이 필 때 찾고, 꽃이 질 때 떠나는 벌보다 혹한이 몰아쳐도 나뭇가지을 지키고 앉아 영혼의 노래를 불러주는 철새 아닌 멧새를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심의원 주변에 고목이 되어도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남아 함께 노래를 할 멧새는 얼마나 되는가.
벌이 꽃을 찾아 날아드는 것은 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벌이 갈망하는 목적은 꿀을 모으는데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당 백이 되는 주변이 많아야 생명력이 길다. 모여든 백이 일로 나눠지면 생명력은 오래 지탱될 수 없다. 뿌리가 연약한 나무는 봄바람에도 쓰러지는 법이다.
산에 사는 새가 아름답다. 새가 보면 웃을 일이다
차가운 겨울 나뭇가지를 붙잡고 영혼의 노래를 불러주는 멧세를 안아야 한다.
하지만 권력앞에선 모든걸 내동댕이 치는 이기적인 부류속에 누가 '꿀벌인지 멧세인지를 가늠하기 쉬운 일일까요.
01/03 16:52 삭제
이렇게 말해도 못알아 들을분인것 같은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게 시민들입니다.
기대하지 말도록...
01/03 12:36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