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해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선생이 소치(小痴) 허유(許維)가 그린『방석도산수도(倣石濤山水圖)』에 제발(題跋)을 쓴 그림이다. 제발의 내용으로 보아 소치화풍이 형성되지 않은 젊은 시절에 그려졌음이 분명하며, 그래서 그의 개성이 나타나 있지 않다. 여기에 구사된 깔끔한 갈필의 수묵에서 추사 김정희가 소치 허유에게 터득케 한 문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추사와 허유는 사제간(師弟間)의 정이 대단했다. 추사가 허유에게 호를 내리며 설명을 했다. '치(癡)자 한자를 중심으로 하여 재예가 절묘, 겸손함의 절묘, 그림이 절묘라고 하여 세칭 삼절이라 하는 바이다. 원(元) 나라의 황공망(黃大癡)은 크게 어리석은 자라며 자신을 낮추는 대치(大癡)라는 호를 갖고 오히려 빛나는 화가가 되었다. 소치(小痴), 자신을 낮추고 부끄러워할수록 더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대치보다 더 큰 화가가 되라는 의미로 소치라 지었네. 이제부터 자네의 이 별호가 자네의 그림과 함께 조선팔도는 물론멀리 중국까지 뻗어 나가길 바라네.' 허유는 눈물을 흘리며 추사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아무튼 이 산수도를 통해서 소치가 폭넓게 대가들의 화법을 습득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는 당시의 화단에 청조화풍의 유입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러한 유입은 추사가 주도한 것일 것이다. 그림 상단에 쓰인 추사의 제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허유(許維)의『방석도산수도(倣石濤山水圖)』에 추사가 제발을 씀
小痴此畵固佳, 同收於臨摹石濤卷, 全不相稱, 以其不斷畵家從橫習氣耳, 使之剔出別置他卷, 仍題示如此. 秋史.
소치(小痴) 허유(許維)의 이 그림은 뛰어난 가작으로, 중국 청(淸)나라 초기의 화승(畵僧)인 석도(石濤)의 작품을 임모하였다.
그런데 석도(石濤)의 화풍을 닮지 않은 것은 소치(小痴)가 부단히 습기를 익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그림을 떼어내어 다른 서첩에 옮기면서 이와 같이 제발(題跋)을 쓴다. 김정희.
 |
|
소치 허유의『방석도산수도(倣石濤山水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