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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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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세월같아 보이지만 개개인의 삶을 돌아보면 바로 그 추억은 엊그제만 같다. 짧은 것이 생이요, 더 짧은 것이 권력의 생애다. 추억하면 인생 무상이지만, 세상의 이목을 끌어모으던 한때의 권력을 돌아보면 인생허무이다.때문에 현재에 충실할 일이다.
구미시장 선거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지하에 움추려 지냈던 선거 기운들이 봄날이 아닌 겨울날에 싹을 틔우고 있다. 그 싹이 이파리가 되고, 이파리들이 모여들어 과연 누가 6월의 꽃을 피울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1월 초 현재, 6월 4일 실시되는 구미시장 선거에는 3선을 겨냥한 남유진 시장과 경선과 본선을 포함해 세 번째 도전에 나서는 김석호 경일대학교 산업 경영대학원 전 명예원장, 구미 경제 명예의 전당인 구미상공회의소 사랑방을 두 번째 사수하고 있는 기업가 출신의 김용창 구미상의회장,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3급 부시장의 직에 오른 이재웅 전 경상북도 도지사 비서실장, 경선과 본선을 포함해 세 번째의 도전장을 낸 채동익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 공동 대표등 5명의 출마 예상자가 명함을 내밀고 있다.
이들 중 4명의 인사는 투표가 종료되는 6월4일 밤 늦은 시간에는 고독한 눈물을 흘리리라. 하지만 낙루落淚의 시간이 앞당겨 질 수도 있다. 기초단체장 공천제가 유지될 경우 4월말 혹은 5월초에는 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치러야만 한다.
따라서 5명의 인사 중 대부분은 꽃피는 봄길에 멈춰서서 홀로 눈물을 꼽씹어야 한다. 정치 세계에서는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선 구미시장 선거와 함께 희망과 절망의 외나무 다리를 걸어야 했던 인사들은 누구였을까,
▶ 민선 구미시장 시대 개막
▷박미진 시장은 마지막 관선 시장, 2개월 최단 임기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행정의 효율화를 주창하면서 도농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선산지역 도의원은 통합 반대에 사활을 걸고 삭발에 들어갔고, 일부 선산지역 주민들은 역사의 중심인 선산군의 구미시 종속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치적 ▪시대적 기류는 선산군의 구미시 통합으로 이미 기울고 있었다.
통합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시절인 1994년 1월1일부터 1995년 4월 19일까지 관선 시대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이가 박병련 시장이었다. 혹한이 몰아쳐도 주머니에 손을 넣는 일을 절대 금기사항으로 여길 만큼 자기 관리에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박시장은 부하 공무원들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댔다.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구미시청 역사의 잔잔한 일화로 잊혀지지 않고 있다.
뒤를 이은 이가 바로 박미진 시장이었다. 민선시장 선거 열기가 한여름처럼 후끈 달아오르던 1995년 4월 20일부터 선거가 종료되던 1995년 6월 30일까지의 2개월 동안 시장직을 수행한 박시장은 새로운 시정방침을 정하지도 않았다. 임기 2개월의 박시장에게는 사실상 민선 시장 선거 업무를 무리없이 완수해야 한다는 책무가 주어져 있었다.
▷김관용 민선 초대시장 취임
구미면이 읍으로, 읍이 구미시로, 구미시가 통합 구미시로서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기까지 관선 시장을 거친 이는 14명이었다. 그 마지막 바톤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지금의 경북도지사인 김관용 민선시장이었다.
하지만 민선시장이 되기까지는 산 넘고 다시 산을 넘는 고행의 순간순간 이었다. 고아읍 출신으로 용산세무서장을 끝으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 공천장을 받고 낙향한 당시 김관용 후보는 평생을 구미에서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전병억 당시 자유민주연합 전병억 후보와 일전불사의 투지를 불살라야만 했다.
김윤환, 박세직 국회의원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이 버티고 있었지만 선거전은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을 만큼의 안개 정국이었다. 사실상 일대일 구도였지만, 뒤늦게 뛰어든 무소속 강구휘, 장경환 후보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았다. 당선권에서 이들 후보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을구가 텃밭인 김관용 후보는 같은 을구 출신인 장경환 후보의 선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역으로 갑구가 텃밭인 전병억 후보는 같은 갑구 출신의 강구휘 후보의 선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마치 미분법을 풀 듯 얽히고 설킨 복잡 다단한 상황의 종료는 김관용 후보에게 승기를 안겨주었다.
개표결과 김관용 후보는 4만 6130표로 4만 4469표를 얻은 전병억 후보를 1천 661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개표가 진행되던 1995년 6월 27일 늦은 밤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갑구지역 개표가 진행되던 올림픽 기념관에서는 전병억후보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개표결과 3만 5296표를 얻은 전병억 후보가 3만 2539표를 얻은 김관용 후보를 2천 757표차로 눌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을구에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1만 3591표를 얻은 김관용후보가 9천 173표를 얻은 전병억 후보를 4천 418표차로 따돌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갑, 을구 합계결과 김 관용 후보는 1천 661표차로 신승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갑구 출신의 무소속 강구휘 후보는 15.08%인 1만9805표였고, 을구 출신의 무소속 장경환 후보는 11.73%인 1만 5404표, 무소속 강상수 후보 2천 891표, 무소속 경광수 후보는 2천 584표였다.
▷무적의 재선, 단독출마한 김관용 후보
초선 임기는 3년이었다. 제2대 구미시장 선거가 1998년 6월4일로 다가오면서 1천6백여차로 분루를 삼킨 전병억 후보의 재도전 의지는 가열되기 시작했다. 1995년 선거의 후유증을 다스리기 위해 붓글씨로 3년의 세월을 억눌러 지냈던 전병억 회장이었지만, 3년의 세월이 흐른 구미시의 정세는 상전벽해돼 있었다.
결국 주변의 간곡한 만류에 힘입어 전병억 회장은 재선 도전 의지를 가슴 깊이 들여놓아야 했고, 선거전은 김관용 후보의 단독 출마로 매듭됐다.
▷ 이강웅 후보와 2파전, 3선 고지 오른 김관용 후보
단독출마로 재선의 벽을 쉽게 무너뜨린 김관용 후보에게 세 번째 선거는 두 번째의 단독 출마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부터 김관용 후보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감사원 사무관 출신의 이규건후보가 경선도전장을 냈기 때문이었다. 경선초반부터 과연 김관용 후보가 몇 %로 차로 이기느냐는 식의 결론이 예고된 경선이었지만, 40대 초반이라는 패기와 참신함을 앞세운 이규건 후보의 도전장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체육관에서 경선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체육회 사무실로 달려온 김관용 후보가 ‘몇 %로 차로 이겼는지“를 계산 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김후보가 이처럼 예민 반응을 보였던 것은 본선전에 박근혜 현 대통령의 이끄는 한국 미래연합 이강웅 후보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본선에 오른 한나라당 김관용 후보는 고시동기이면서 친구지간으로 포항 부시장을 지낸 한국미래연합 이강웅 후보, 민노당 황준영 후보등과 3파전의 길을 가야만 했다.
2002년 6월 13일,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김관용 후보는 66.4%인 6만 6059표를 얻으며, 2만 1691표로 21.8%를 얻는데 그친 이 강웅 후보를 여유있게 물리치며 3선 고지에 안착했다. 민노당 황준영 후보는 11.79%인 1만1736표였다.
▷치열했던 4대 민선시장 선거전
제4대 구미시장 선거전이 있던 2006년의 구미정가는 급변기였다. 2005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천명하고 나선 것이었다. 엘지 기업의 파주 이전설 등으로 곤욕을 치루던 김관용 시장은 좌불안석이었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구미에 치명타로 다가올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챦아도 경상북도 도지사를 겨냥하고 있던 김관용 시장으로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정장식 포항시장, 김광원 국회의원이라는 거물의 벽을 넘어야 할 판국이었다.
김관용 당시 시장의 지혜는 남달랐다. 2005년 11월 7일, 시장은 정부와 여당의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반발한 구미시민과 도민들을 공단운동장에 집결, 대규모 궐기 대회를 개최하는 대단함을 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갈 길은 편치가 않았다. 궐기대회가 있은지 14일후인 2005년 11월21일. 가산- 도개 국도 개설공사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를 방문한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행사장에서 김관용 시장을 면전에다 놓고, 수도권 규제 완화 철회 궐기 대회를 의식한 발언을 통해 공격을 하고 나선 것이다.
“수도권으로 공장 가지말라고 외쳐봐도 소용없다. 그 이전에 혁신역량을 키워야 하고,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었어야 한다. 일류대를 나온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지방으로 오겠느냐, 교육,문화 시설등 주변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차기 시장은 이러한 여건들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추장관의 발언은 김 시장에겐 충격이었다.
하지만 권력 무상이었다. 추 장관이 장관직에서 내려앉고 김관용 시장이 지사의 자리에 오른 2007년 6월 1일 오후, 구미역에서 열린 KTX 구미역 정차 환영식장에서 김관용 지사는 행사장에 앉아 있는 추병직 전 장관을 향해 이런 말을 남겼다.
“ 이정도 발전을 시키려면 전임시장이 얼마나 고생했겠나. 추장관도 현직 장관이셨으면 축사를 통해 오늘을 축하 하셨을 텐데...”
세월따라 요동치는 것이 권력이었다.
이처럼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 발표로 구미정국이 요동을 치던 2006년 5월 31일의 제4대 구미시장 선거는 과열전으로 치달았다.
남유진 국가청렴위원회 홍보협력국장, 윤영길 구미시의회 의장, 김진태 변호사, 김석호 전 경북도의회 의원, 채동익 구미시 경제통상국장등 5파전으로 전개된 한나라당 후보 경선전은 뜨겁기 그지 없었다.
결국 경선 본선에서 남유진 현 시장은 김석호 전 도의원, 김진태 변호사, 윤영길 의장을 누르고 한나라당 후보에 지명됐다. 후보별 자성론도 만만차 않았다. 구미시 역사상 최장수 의장을 지내면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던 윤영길 의장은 뒤늦게 경선전에 뛰어들면서 기대이상의 결과물을 도출시키지 못한데 대해 내내 아쉬워 했다. 김성조 당시 국회의원과 김석호 전 도의원은 오랜 기간 동안 다져온 우정에 금을 새기기도 했다.
본선 결과는 남유진 후보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매일 아침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참배할 정도로 박정희 정신을 추앙하던 한나라당 남 후보는 75.89%인 9만8758표를 획득했다. 반면 무소속 채동익 후보 1만5391표로 11.82%, 민노당 최근성 후보 1만 3265표로 10.19%, 무소속 신수식 후보 2천 719표 등이었다.
▷무경선 한나라당 남유진 후보, 김석호 후보 선전
2010년 6월 27일 실시된 제5대 구미시장 선거에서 남유진 시장은 경선없이 지명을 통해 한나라당 후보의 명찰을 달았다.
하지만 쉽게 한나라당의 명패를 얻었지만 남유진 후보는 갈수록 거세게 추격해 오는 친박연합 김석호 후보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러나 투표결과 승기는 남유진 후보에게 돌아갔다.
개표결과 남유진 후보는 53.09%인 7만 1719표, 친박연합 김석호 후보는 33.51%인 4만 5263표, 무소속 구민회 후보는 13.39%인 1만 8091표였다./ 김경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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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에서는 출마자가 없나요. 구미에는 그래도 20% 이상은 야당인데 참으로 안타깝네
01/07 13:26 삭제
참으로 세월 빠르네요 엊그제가 시장선거일 같은데 벌써 또 선거라니 그러니, 앙다물고 싸울일 것만도 아닌 듯
01/07 13:12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