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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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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은 흔히들 조선시대 화가를 말할 때 3원 3재(三園三齋)를 들 수 있다. 3원(園)이란 김홍도, 장승업, 신윤복을 말하며, 3재(齋)는 정선, 심사정, 조영석을 말한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영석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삼원 삼재는 다들 잘 알아도 그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원주행선도』그림은 1723년 그의 나이 38세에 그린 작품이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배가 빠른 듯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흐르고 있으며, 왼쪽 상단은 버드나무 줄기와 가지가 감싸 안고 있는 반면에 오른쪽 담묵으로 강 건너편 산을 그려 화면에 속도감과 안정감을 모두 구현하였다. 이 그림은 또 조영석이 은거시절에 그린 그림 3점, 즉 산수도, 원주행선도 쌍폭과 큰 형님인 조영복의 초상화와 더불어 화인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특히 산수도와 원주행선도는 벗 김상이(金相履)가 1723년 원주 섬강(蟾江)쪽으로 낙향하게 되자 그의 청을 받아 이별의 정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쌍폭의 그림에는 서문과 율시를 그림과 같은 크기의 별지에 써서 붙인 것이 있어 그 내력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서문은 '주부 김상이씨가 장차 집안 식구들을 이끌고 강원도 원주의 섬강으로 아주 돌아가려 하면서 나에게 시와 그림으로 떠나는 길을 전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림에 손을 끊은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지만 지금 벗들이 모두 동서로 흩어져 앞으로 기약이 쉽지 않게 되었다. 또한 김상이께서 부탁하는 뜻도 우연이 아니다. 오랫동안 버려둔 채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마침내 김상이를 위하여 이 그림을 그리고 아울러 율시 한 수를 적어 작별의 뜻을 푼다.' 그의 시와 글씨 또한 그림 못지않은 원숙미를 느끼게 한다.
▶조영석의『원주행선도』에 제시를 씀
收拾琴書載一舟, 携將家室上原州, 卽今京洛無靑眼, 歸路江湖接素秋. 吾道可堪衰鳳歎, 客行眞似憶鱸遊, 從玆我亦他鄕去, 萍梗東西各遂流. 癸卯仲秋 趙榮祏.
거문고와 책을 챙겨 한 척의 배에 싣고,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 원주로 올라간다네. 지금 서울에는 반기는 이 없으나, 돌아가는 길 강호에선 가을을 맞으리. 세상은 쇠약한 봉황의 탄식을 견딜 만하고, 그대 떠나는 모습은 마치 농어회 생각나 가는 듯하네. 이제 나 또한 타향으로 떠나니, 부평초처럼 동으로 서로 모두가 떠다니누나. 1723년(경종 3) 음력 8월 조영석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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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 조영석의『원주행선도(原州行船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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