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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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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와 기자 그리고 시민단체 관계자가 같이 술을 마시면 대금은 누가 지불할까요?’
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나라에 시민운동의 영역이 확장되고 시민운동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과 역할이 많았던 시절, 이런 우스개 질문이 있었답니다.
술집 영업이 원래 법을 다 지켜서는 돈을 벌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지금은 절대 그렇지않다고 합디다만) 놀부의 심술보 보다 큰 심보를 가지지 않고는 형사 나리에게 술값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로 기사와 관계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러갈 때 돈을 지불해본 역사도 경험도 없는 사람,
그리고 먼저 술집에 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가자고 했고 따라왔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은 초청한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더구나 가난한 시민단체가 무슨 돈이 있어 술값을 내느냐, 그러니까 으레 누가 낼 것이고 나는 주는 술이나 음식을 먹으면 된다고하는 사람,
세 사람 모두 술값은 자기가 계산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고 그런데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며 빠르게 머리를 굴립니다.
10년이나 지난 난센스 퀴즈를 다시 떠올리는 데 당황하셨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의 모습이 응당 지불해야 할 술값 지불에 대해서 자신은 피해갈 명분을 주어 담는 것처럼 선출자의 의중이나 선택 근거 보다는 당선을 위한 따 놓은 당상(?)인 정당공천에 이리 목을 매고 자신이야 말로 공천 적임자라는 논리를 주장하는 것이 술값을 떼어먹으려는 것 같이 복사한 듯 선명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저마다 정말 합당한 이유와 명분, 그리고 자기만의 영역과 살아온 모습, 그리고 헌신을 위한 노력들을 자랑하면서 유일한 문제의 해결자로 나타납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정당공천 폐기라는 ‘대통령의 공약은 空約’인줄 알고 있기에 연임을 당연시하는 현직은 그동안의 소속정당에의 기여도, 위원장의 선거 시에 노력 등을 앞세우기 바쁘면서 그러니 당연히 공천은 본인의 몫이 되고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라는 공식에 따라 당연한 흐름으로 치부합니다.
몇 번의 도전장을 단진 분들의 출사표 역시 당연히 자신이 대상이 되어야 당의 공천심사가 정당하고, 만일 다른 사람이 공천이 된다면 ‘문제가 있는 공천’이거나 ‘제3의 요소(돈? 인맥?)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니 당연히 이번 공천에 적임자는 자신이라고 만나는 사람에게 꼭 같은 소리를 노래 부르듯 되풀이합니다.
이번에 처음 도전하시는 분 역시 그 명분에서는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역사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람이 선택되어야하고 흐린 물에 놀았던 사람과 달리 신선함으로 만들 밝은 모습을 상상하면 틀림없이 자신만이 공천의 대상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모두가 자신만이 분명한 명분이 있음에 분명한 논리를 전개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의 홍수에서 과연 그들이 누구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고 선택된 후 누구를 대상으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마다 무지갯빛 그림을 펼쳐놓고 자신만이 정당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면서도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권리가 무시당하고, 헌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노동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에 대하여 침을 뱉으며 쫓아내고 있으며,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질서조차 무시되는 현실(도로변 주차문제, 특히 금지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놓은 공원 도로변, 장애인 차량 표시 삭제 등…….)에는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모습은 정작 밥이나 술은 먹지만 돈을 낸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한 자신들의 명분이나 권리 당연한 선택이라 하지 말고 이러한 선택의 근원에 있는 아픔에 같이하는 모습이 없을 때 우리는 또다시 방관자이며 잘못 선택한 결과로 표를 찍은 손가락을 잘라야지(?) 하는 후회의 씁쓸함을 맞이할 것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술값을 계산한 사람은 술집 주인 이 랍 니 다 ~람쥐(2014.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