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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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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광사의 초상화이다. 그는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하고, 동국진체를 이룩한 조선시대 대표적 서예가 중에 한 사람이다. 초상화면 오른쪽 상단에 화제가 쓰여 있어 이 작품의 주인공과 제작시기, 화가 등 내력을 알 수 있다. 기록을 토대로 1774년에 이광사의 말년 70세의 모습을 신윤복의 아버지로 유명한 화원화가 신한평이 그린 것임이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필묘(筆描)와 은근한 요철감을 표현하는 수법으로 강렬하지는 않지만 품격 있고, 깊은 전신(傳神)을 성취하였다는 점에서 수준이 높은 역작이다. 또한 신한평이 초상으로 유명하였지만 전해지는 작품이 없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희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도포에 방건(方巾)을 착용한 반신 좌상으로, 선묘를 최소화하고 음영의 변화를 강조한 이목구비의 묘사가 간결하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검붉은 얼굴색, 왼쪽 눈썹 속의 점, 코와 뺨에 엷게 퍼져 있는 검버섯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에서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맑고 형형한 눈빛은 이광사의 고결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지만 옷 주름이 번잡하여 과장된 느낌이 있고, 길고 끝이 뾰족하게 빠진 주름 모양, 각을 주어 표현한 소매 단 등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표출된다. 이러한 긴장은 수심이 깃든 얼굴 표정과 함께 유배에 처한 이광사의 처지와 심정을 전달하는 듯 하며, 화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광사(李匡師)의 초상(肖像)에 화제(畵題)를 씀
朝鮮國 完山李公 諱匡師 字道甫 號圓嶠先生 遺像 我 英廟 壬午 先生自富寧移謫 薪智島 丁酉 八月二十六日卒 于島之 金實村寓舍 壽七十三 此本卽 先生七十歲 甲午冬 畵師申漢枰 所寫 八月 二十六日 卽 先生 降辰先生在島 自稱壽北老人
조선 사람이며, 전주이씨로 이름은 광사이고, 자는 도보이요. 호는 원교이다. 선생은 나주괘서사건에 연좌되어 함경도 부령에서 귀양 살다가 1762년 전라도 완도의 신지도로 이배되었다. 1777년 8월 26일 73세로 신지도의 금실촌 우거에서 사망했다. 이 초상은 1774년 겨울에 선생 70세 때 신한평이 그렸다. 즉 선생은 8월 28일 졸하는 날까지 신지도에서 스스로 수북노인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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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 이광사의 초상(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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