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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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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정선(鄭歚)이 65세 때인 1740년(영조 16) 초가을 양천현령으로 부임해 오면서 당대 진경시의 태두이던 이병연(李秉淵)과 시화(詩畵)를 서로 바꿔보자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의 약조를 맺고, 그 약조를 지켜 그려낸 것이『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이며, 그중에 1폭인 목멱조돈(木覓朝暾)이란 그림이다. 아래 그림의 화시(畵詩)는 이병연이 정선에게 보낸 시를 정선이 쓴 것으로, 정선은 그 시상에 맞춰 화의(畵意)를 발하였던 모양이다.
정선이 부임해 온 양천현은 지금 서울 가양동 궁산 아래에 있었다. 궁산이 양천현의 진산이었으니 현재도 그 산 중턱에 향교의 옛 터가 있다. 산 밑으로 한강이 휘돌아 흘러가서 양천현은 강과 산을 모두 등에 지고 있는 형국이다. 한강은 이 부근에 이르러 호수와 같이 넓어져 행주(幸州)로 이어지니 이곳을 흔히 소동정호(小洞庭湖)로 부르기도 하였다. 강 건너로는 삼각산 연봉이 백색의 신비로움을 자랑하며 줄기줄기 내려와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장관이 한눈에 잡히고, 동남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강상류 저 건너에 남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양천현의 동헌(東軒)인 종해헌(宗海軒)이나 궁산 기슭에 세워졌던 소악루(小岳樓)에 앉아서 해 돋는 정경을 바라보면 초봄의 해는 남산, 즉 목멱산(木覓山)에 솟아 오르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병연은 목멱산(木覓山)에서 아침 해 돋아 오른다. 즉 목멱조돈(木覓朝暾)이라는 시제(詩題)로 시를 지어 보냈다. 이 시는 정선의 평생친구 이병연이 그림에 답한 시로, 둘은 진경산수의 시와 그림으로 일가를 이루며 시와 그림을 서로 건네며 하나의 첩(帖)을 만들었다.
그림의 겸재낙관 옆에 낙관보다 큰 천금물전(千金勿傳)이라 두인이 찍혀있는데 친구 이병연과의 우정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둘이 나누어 만든 이 작품을 '천금을 주어도 팔지 말자.' 라는 의미이다. 목멱산에 떠오르는 해를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읊으며 같이 음미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의 체취가 깊이 배인 그림이다.
▶겸재의『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중 목멱조돈(木覓朝暾)에 화시를 씀
曙色浮江漢, 觚稜隱釣參, 朝朝轉危坐, 初日上終南.
새벽 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남산에서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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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 정선의『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중 목멱조돈(木覓朝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