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오는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경북도지사 경선 후보군이 3파전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새누리당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김태환 국회의원)는 김관용 현 도시자, 권오을 전 국회의원, 박승호 전 포항시장을 대상으로 4월 13일 후보자 선출대회 통해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도당은 4월6일부터 12일까지를 선거운동 기간으로 정했으며, 선거운동 방법은 합동 연설회 3회, TV토론회 2회 이상 등이다.
선거인단 전체 투표는 4월 12일 진행되며, 개표 및 후보자 선출대회는 일요일인 4월 13일 실시키로 했다.
 |
| ▶김관용 지사 |
16개 광역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3선에 도전하는 김관용 지사는 일부 정치권의 3선 불가론 움직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3월 6일 출마 선언을 통해 “우리 경상북도를 더 크고 더 강하게 키워 달라는 300만 도민들의 여망을 가슴에 새기며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다”면서 , “경북의 자존과 미래를 위해 잠시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며,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엄한 현실 속에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라면서 츨마를 공식 선언했다.
 |
| ▶권오을 전 국회의원 |
권오을 전 국회의원은 지난 2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 세대교체와 인물교체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전제하고 ” 30여년간 경북이 부족했던 다양성과 개방성, 진취성과 역동성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이 새누리당과 경북이 살 길"이라며 출마를 선언했다.
 |
| ▶박승호 전 포항시장 |
3선 시장 출마를 포기한 박승호 전 포항시장은 또 지난 2월 17일 “ 경북에 더 큰 변화와 도약을 위한 새 바람이 일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선언한 비정상의 정상화에 경북이 앞장서기 위해 포항시장 3선의 기득권을 내려 놓고 새누리당 정치쇄신의 밀알이 되기 위해 도지사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되돌아 본 4,5대 경북도지사 후보 경선
2006년, 김관용 현 지사에게는 운명을 가르는 해였다. 4대 경북도지사 한나라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일인 2006년 4월 22일 당일까지도 김지사의 승리는 불투명했다.그런 만큼 후보 경선을 위한 경선장은 뜨거운 열기와 긴박감으로 달아올랐다.
포항시장 출신의 정장식, 구미시장 출신의 김관용, 국회의원 출신의 김광원,지역별로는 포항과 구미의 경쟁이었고, 지방대와 서울대의 대결이기도 했다.
대구 사범대학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김관용, 서울대 출신의 정장식,김광원의 대결은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특히 당시 김관용 후보는 들성 김씨였고, 김광원 후보는 일선김씨이기도 해서 관심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경선이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던 정장식 후보는 경선 당일까지만해도 승리가 점쳐졌다. 하지만 결과는 이외였다.
전체 유효투표 4천452표 중 김관용 후보는 41.3%인 1천840표를 획득한 반면, 정장식 후보는 1천402표, 김광원 후보는 1천210표를 얻는데 그쳤다.이렇게 해서 2006년 4월22일 3인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이후 김관용 지사는 열린 우리당 박명재 후보에 압승을 거두면서 경북도지사에 당선됐다. 선거패배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짧지 않은 23개월 동안 외로움을 달래오다 2008년 3월 차관급인 중앙공무원 교육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광원 전 국회의원 역시 정장식 전 포항시장보다 6개월 늦은 2008년 9월 12일 경선 패배 30개월만에 마사회장에 임명이 확정됐다.
박명재 씨도 김지사와 인연이 깊다. 2006년 5월31일 경북도지사 본선에서 김지사는 열린 우리당 후보인 박명재 씨와 맞붙어야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정서의 경북도에서의 열린우리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와의 경쟁은 예상했던 대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
이후 박명재 후보는 참여정부의 행자부장관으로 임명이 되었다. 그 또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세상에서 사라지는 인물로 분류가 되었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2009년 2월12일 포천 중문의대 신임 총장을 선임하는 학교법인 성광 학원 이사회, 이사진 회의에서 새 총장으로 선임되면서 또 한번 파란을 일으켰다.
박명재 전 장관에게는 그 이후에도 행운이 뒤따랐다. 지난 해 실시된 포항시 남구-울릉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말을 갈아타고 국회 입문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4년 후인 2010년 4월 7일은 제5대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후보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하나라당 경북도당 공심위는 김관용 도지사에게 재도전한 정장식 전 포항시장이 여론조사 결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자, 이날 오후 경선없이 김관용 지사를 후보로 결정했다.
당시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2006년 경선당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집요하게 김 지사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심위가 김지사를 후보로 결정하자, “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기원한다"며 " 그동안 성원해 주신 경북도민 여러분과 지지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는 신사 발언을 했다. 정 전시장은 또 경북발전을 위해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정 전시장은 2012년 19대 포항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19%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다시 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고, 총선 당시 정 전시장의 공격대상이었던 당시 김형태 새누리당 후보는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새누리당으로부터 출당 조치를 당했고, 이어진 재판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특히 의원직 상실에 따라 지난 해 10월 실시된 포항 남-울릉군 재보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됐다.
정 전시장과 박 명재 후보의 직간접적 인연도 정치사의 특이사항으로 기록될 만한다. 2006년 정 전시장이 경북도지사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을 당시 박 명재 후보는 열린 우리당 경북도지사 후보로 본선에 대비하고 있었다. 잠재적 경쟁상대였던 것이다.
또 지난 2012년 실시된 포항 남구-울릉군 총선에서 정 전시장이 꿈꾸던 국회의원 자리는 결국 박명재 의원에게 돌아갔으니 말이다.
▶3선 경북도지사 꿈꾸는 3선 구미시장 출신의 김 관용 지사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중 유일하게 3선의 경북도지사를 목표로 새누리당 공천을 위한 경선전에 뛰어든 김관용 지사는 자신의 정치사의 한 모퉁이에 포항시장 출신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4-5대에는 연이어 정장식 전 포항시장과 경쟁을 해야 했고, 6대 도지사 선거를 위한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서도 포항시장 출신의 박승호 후보와의 경쟁을 피할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선의 경북도지사에 도전하기 까지 김관용 지사의 정치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행정고시 합격 후 중앙부서에서 주요 보직을 거친 김관용 지사가 정치세계로 진입한 계기는 전 용산세무서장의 직책으로 1995년 제1대 민선구미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였다. 이 당시 김지사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이가 바로 전병억 현 박대통령 생가보존회장이었다.
갑,을 선거구로 나뉘어 개표가 긴박하게 진행되면서 갑 지역 개표장이었던 올림픽 기념관에서는 전병억 회장이 1천수백표를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김지사는 갑지역에서 뒤진 표를 을지역에서 보충했다. 특히 고향인 고아읍의 몰표에 힘입어 김지사는 손에 땀을 쥔 끝에 승리를 거둬들였다.
박빙의 승부수였다.
이어진 1998년과 2002년 2대, 3대 시장 선거는 쾌속 질주였다. 그러나 3선 시장 마지막 임기를 1년 남겨놓은 2005년, 김관용 당시 구미시장에게는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이 놓였다.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 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방침을 들고 나온 것이다. 결국 그해 11월 17일에는 정부와 여당의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반발한 구미시민을 비롯한 경북도민들이 구미 공단운동장에 집결, 대규모 궐기 대회를 가졌다.이 당시 수도권 규제 완화의 주무부처의 장은 바로 건설교통부였고, 장관이 바로 구미출신 추병직 씨였다. 건교부 차관을 사직하고 제 17대 구미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김태환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석패한 추 병직씨는 선거에서는 졌지만, 차관에서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한 추 장관이 수도권 규제 완화 반대 대시민 궐기대회가 있은지 4일 뒤인 2005년 11월21일. 가산- 도개 국도 개설공사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를 방문했던 것이다.
대규모 궐기 대회를 의식한 추 장관은 그러나 개통식 기념식장에서 김관용 당시 시장을 면전에다 놓고,면박을 주었다.
“수도권으로 공장 가지 말라고 외쳐 봐도 소용없다. 그 이전에 혁신역량을 키워야 하고,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었어야 한다. 일류대를 나온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지방으로 오겠느냐, 교육,문화 시설등 주변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차기 시장은 이러한 여건들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직인 김관용 시장이 문화, 교육 인프라 등 정주여건 개선시책을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했더라면, 공장들이 지방으로 (구미) 몰려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 이러니, 공장이 가면 안된다고 외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김 시장은 임기가 거의 마무리 되었기 때문에 차기 시장이 이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식의 비아냥 발언은 도지사 출마를 결심한 당시 김관용 시장으로 하여금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직격탄이었다.
그날 김 시장은 경운대에 마련된 오찬장에도 불참할 만큼 기분이 많이 상해 있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따른 시민 감정이 시장의 책임론으로까지 번질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 도지사 출마를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던 김 지사에게 추장관의 발언은 자칫 핵폭탄이 될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 따라 권력에도 변화가 생겼다. 김관용 당시 시장은 소통령으로 불리는 민선 경북도 도지사가 되었고, 추병직 건교장관은 2006년 11월 15일, 직에서 물러나 전직 장관이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6월1일 오후 구미역에서 열린 KTX 구미역 정차 환영식장 행사에 참석한 두 인사는 상황이 역전된 가운데 만났다.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김관용 지사는 내빈석에 앉아 있는 추전 장관을 향해 이런 말을 남겼다.
“구미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추장관께서도 현직 장관이셨으면 축사를 하셨을 텐데 말입니다. ”
위기 때마다 해학과 재치로 어려움을 극복해 온 것으로 알려진 김관용 지사.
과연 4월 13일 실시되는 새누리당 경북도지사 경선에서 김 지사는 다시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일까.
“ 세대교체와 인물교체는 시대적 흐름”이라면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권오을 전 국회의원과 “경북에 더 큰 변화와 도약을 위한 새 바람이 일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박승호 전 포항시장.
이들 두 후보가 부르짖는 변화 요구에 대한 압박 속에서 “경북의 자존과 미래를 위해 잠시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며,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엄한 현실 속에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라는 김관용 지사에게 새누리당 당원들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4월 13일이 기다려 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