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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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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언제 피었다가 꽃잎을 내려놓았고, 이팝나무 하얀 꽃은 지금 피고 있나, 지고 있나.
봄은 왔건만 봄 같질 않다. 모두가 할딱거리며 달려 온 숨을 죽인 채, 손에 땀을 모아 쥔 채, 등줄기를 타고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슬픔을 쓸어담은 채 우리는 며칠 째 가는 길 위에 멈춰 서 있나.
우리가 낳고 기른 우리의 착하고 고운 혈육들이 저 수심깊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줄을 부여잡고 목놓아 우리를 부를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했다.
어른인 내가 부끄럽다. 살려달라고 손을 내민 그 착하고 슬픈 아이들에게 손 조차 내밀 수 없는 어른들의 무기력함, 참으로 죄스럽기 그지 없다.
생명을 사랑한다고 목놓아 외쳐댔지만, 때로는 더불어 살아가자고 다짐을 하곤 했건만, 잠시 스쳐지낸 생각에 불과했질 않나. 우리 어른들은 그 깊은 가슴속엔 어떤 일기들을 몰래 쓰고 있었나.
그 착한 아이들이 운명을 달리한 채 우리 곁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식어버린 시신을 끌어안은 아빠, 엄마의 쓰라린 가슴이 겨울한파로 몰아치며 봄날의 꽃잎들을 떨궈내리고 있지만, 우리는 왜 지금 봄길에 서서 서로의 탓만을 하고 있나.
내 탓이라는 가슴들은 없고, 남의 탓이라는 목소리만 요란하다. 수많은 우리의 착한 아이들이 저 수심깊이에서 허우적 대는데 내탓은 없고 남의 탓만 하는 목소리는 드높다.
이 쓰라린 날에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나. 이 참사는 모든 우리 어른들이 불러들인 비극이었다.
내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 사리사욕과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 집착과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기계주의적 집념이 불러들인 참극이었다.
지금은 남의 탓을 할 때가 아니다. 가슴 저 깊이 흐르는 내면의 강물에 얼굴을 파묻고 돌아보라. 이 참극 앞에서 누가 누구를 탓할 양심이 있는가 말이다.
방송도, 언론도, 칼럼니스트도, 논객도, 지금은 남의 탓을 할 때가 아니다. 누구를 죽이느니 살리느니 삿대질을 할 때가 아니다. 모두가 그 아이들의 아빠, 엄마인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물길 속으로 육신을 던져 저 곱고 착한 아이들의 생명을 대신해 줄 마음이 없다면 숙연하게 고개를 숙인 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저미는 가슴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노라던 정치권도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내각이 총 사퇴해야 한다는 정치권, 어떻게 해서 이 나라 정치 세계가 이렇게도 무책임하고 무정한가. 비겁한가.
내각이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는 높고, 국회의원인 자신이 일국의 지도자로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겠노라는 참회의 목소리는 없다.
행정부를 감시, 감독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수임받고 등원한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내각 총 사퇴를 요구하기에 앞서 국민의 권한을 수임받은 국회의원부터 총 사퇴하겠노라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도리가 아닌가.
메스컴 역시 남의 탓만으로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다. 얼마나 생명존중, 인간사랑의 가치관을 실현해 왔고, 그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신랄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는가. 어른들이 꾸려나가는 이 나라, 각자의 위치에서 어른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이러한 참극은 없었을 것이다.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그 착하고 고운 아이들에게는 다름 아닌 죄인이긴 마찬가지다.
지는 꽃 앞에서 꽃을 떨어져 내리게 한 누군가를 찾지말라. 그것은 바로 어른인 자기 자신이다. 아름답고 고운 꽃들이 무수히 낙화하는 이 순간에 우리 어른들은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가 아파해야 한다.이 순간, 우리 어른들은 뼈가 으스러져 내리는 아픔 속에 서 있어야 한다.
누가 옳고 잘못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편집인, 편집국장 김경홍>
맞는 말씀입니다. 어른이 내가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참회하는 맘들이 온 나라에 퍼지기를 갈망합니다,
04/25 08:55 삭제
싸늘한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고 계신 부모님들께 할말이 없습니다.
어른으로서 죄송합니다
04/25 08:53 삭제
우리의 착한 아이들, 어른인 내가 죄인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04/25 08:53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