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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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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들어 유난히 ‘마음’, ‘느낌’에 관한 책들이 많아졌습니다. ‘감정의 인문학’(소영형 외, 봄아필, 2008), ‘감성사회’(최기숙 외, 글항아리, 2014), ‘모멸감’(김찬호, 문학과 지성사, 2014)‘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유숙열 역, 민음인, 2014)이라는 제목의 책들입니다.
‘감정의 인문학’은 저자의 말처럼 ‘지금-여기’의 삶에 대해 논의하면서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새 길을 내고자 마음을 모우고, ‘가르치고-배우는’구도를 벗어난 자리에서 ‘감성적 사회비평’을 지향했다면 같은 저자들이 만든 ‘감성시대’는 ‘감성이 어떻게 사회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를 물으면서 ‘개인의 감성 재현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집단감정을 이루었을 때 이것은 사회와 역사를 성찰하거나 변혁시키는 하나의 실질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감정 특히 모멸감의 속성을 해명’하고 ‘한국사회의 정서적 지형의 조감을 통해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배경’을 밝히면서 ‘인간세계에 나타나는 모멸의 존재방식을 나누어 보고’ ‘모욕을 주고 받지 않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명예와 품위의 진정한 의미를 따져보고 스스로를 돌보며 자족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논의함’을 목적으로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부재로 만들어진 모멸감’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런 인문학적, 사회학적인 학자의 고찰과 방향에 대한 연구와는 달리 ‘착한소녀를 벗어던진 전 세계 십대들의 고백’의 저자 이브 앤슬러는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목격한 사건, 실제 혹은 상상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은 문학적 텍스트’라는 말처럼 미국의 십대 소녀들의 섹스, 임신, 마약 등에서의 외침으로부터 프랑스 소녀들이 담배 피우는 이유와 생의 심장박동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이, 테헤란의 예쁜 소녀의 코를 베어야하는 풍경, 소피아 소녀의 돈에 팔려가는 몸뚱이의 발버둥, 중국 카이용에서 바비 인형을 자유롭게 하라는 소리, 팔레스틴 소녀병사의 담벼락, 총 쏘기, 전쟁연습, 군복, 죄수, 감방…….물도 올리브도 없는 던져진 땅의 괴롭힘이 소리로, 시로, 처절하게 ‘나는 감정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의 물결 즉 인문학에서부터 사회학 나아가 현재의 소리를 통한 인식을 보면서 우리에게 지금 감정이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더구나 피 끓는 300의 청춘이 눈을 뻔히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수장되는 모습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떤 형태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까요?
‘감정의 인문학’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색깔(열정과 분노는 빨간색, 슬픔과 공포는 검은색, 위안과 기대는 푸른 색, 평온과 광기는 보라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을 지금 전 국민이 빠진 맨붕상태를 어떤 색으로 표현해야 하는지요?
감정과 감각, 문자의 흐름과 사회를 음악과의 연결이라는 참으로 보기힘든 시도의 ‘모멸감’ 저자에게 우리는 당하기만 하는 사회상, 문화를 보면서 여기에서 느끼는 모멸감을 어떻게 노래해야 하며, 처절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아픔은 어떤 가사로 연결할 수 있는지 묻고싶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감정이 있는 존재라고 외치는 전 세계의 소녀들만큼이나 더 애타고 더 큰 소리로 우리의 소녀들이 차가운 땅 바닥에 주저앉아 외칩니다.
‘정부가 살리지 못한 친구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왜 살리지 못했나요’
‘왜 돌아오지 못하게 하나요’
‘친구들아 보고 싶다’
‘세월호에는 아직도 내 친구가 있어요’
‘돌아오세요. 죄송합니다’
‘왜 착한 사람들만 죽고 나쁜 사람들만 사나요’
‘가만히 있으라’
‘친구들 목숨을 언딘에 팔아먹은 해경, 그것을 방관한 무능한 정부, 박근혜’
지금의 모습이 주는 ‘감정’, ‘감성’, ‘모멸감’, ‘감정이 있는 존재’에서는
‘이제 엄마라도 싸울께’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인지요? (20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