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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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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의 물들을 서슴없이 받아들여야 강물이 된다. 오수와 우수가 모여들어 거대한 흐름을 이루는 것이 강물이다. 그래서 강물은 포용력에 비유되기도 한다. 고여있는 지천의 물은 썩기 마련이다. 지천의 물을 거부한다면 강물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시되는 이유다. 소통이 주된 가치관이 되어야 만 더 나은 미래의 질서를 꿈꿀 수 있다.소통이 없는 세계는 썩은 우물에 다름이 아니다.
‘아기 업개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제주 속담이 있다. 아기 업개는 아기를 돌봐주는 일을 해주는 어린소녀를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미천한 노숙자로부터 배울 점이 있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
구미지역 사회가 소통부재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민적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시장 선거가 끝난 지 4개월을 넘기고 있지만, 일부 당사자들 사이에는 불통이라는 거대한 암벽이 버티고 앉아 있다. 불통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갈등을 낳는다. 결국 일부 지도자들간의 갈등은 지자체 발전의 퇴행으로 직행한다.
최근들어 일부 지도자들의 머리를 맞대면서 새로운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구미경찰서 이전문제도 그렇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적 시각이 얼마나 지역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가.
생산 기능 일변도의 구미가 한 차원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R&D 기능 보완이 절실한다. R&D 집적지인 구, 금오공대 운동장에 구미경찰서가 들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운동장은 연구 활동 과정에서 심신이 지친 연구원이나 학생들에게 쉼터의 역할, 레포츠 기능을 제공하는 힘의 축적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 이런 우려 속에서 최근들어 일부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미 확보된 경찰서 건축비와 함께 경찰서 부지 마련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별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는 이들의 노력을 평가할 것이 분명하다.
구설에 휘말리는 지도자는 추앙받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사리분별 못하는 지도자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지도자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시각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은 지역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조율할 줄 아는 이성의 힘이 요구된다. 취기 상태나 흥분된 감정으로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는 언행을 습관적으로 하는 지도자는 퇴출되어야만 한다. 43만 시민의 미래 운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맺는다. 그 인연 속에 희노애락이 있고, 사랑과 증오가 있으며, 진실과 위선이 있고, 부정과 진실이 있다.
강물은 오수와 우수, 청류와 탁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다.
위대한 지도자에게 포용력은 생명이다.
춘추시대, 관중의 업적을 기록한 관자의 행새해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바다는 크거나 작은물, 더럽거나 깨끗한 물을 받아들여 넓음을 지향할 수 있고, 산은 작은 돌이나 흙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높게 될 수 있다. 강과 바다는 작은 시냇물의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야 깊어질 수 있다. 지도자가 백성이나 경쟁자를 멀리하지 않아야 큰 뜻을 이룰 수 있고,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역사의 중심에 설수 있다는 얘기다,
지도자는 강물이 되어야 한다. 썩은 물을 받아들여 맑은 물로 만들 줄 알아야한다.이래야만 반목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구미 사회를 아름다운 사회로 안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미지도자들에게 해불양수(海不讓水)의 철학 실천을 주문하고 싶다. 미래를 견인할 수 있는 힘은 지도자의 탁월한 지혜와 실천이 작용하는 가운데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선거과정에서 일어난 갈등과 반목을 서둘러 봉합하기 바란다. 아울러 구미경찰서 이전과 관련된 긍정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이기고 지는 게임의 룰이 아니라 오로지 구미 미래와 시민들을 위해 윈윈해야 한다.
43만 구미시민은 존중해야 할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시민 여론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사고만이 최고라는 독선적 사고의 결과는 불행해 질수 밖에 없다. 머지 않은 날에 시민들이 등을 돌릴 것이고, 독선과 근시안적 철학을 마치 생명처럼 여겨온 지도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행할 것이 분명하다.
지천의 물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면 큰 강물이 될 수 있지만, 지천의 물을 거역한다면 강물이 되기는 커녕 재앙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