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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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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귄지 20년이나 된 외국의 친구들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중국 서안(西安)과 항주(杭州)에 YMCA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으니 축하와 더불어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참에 아내에게 그 동안 못했던 일을 사죄하는 심정으로 같이 오라면서요.
YMCA라는 단체이름은 같지만 중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종교 활동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했고 더구나 두 곳에서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의 모습은 큰 관심의 하나였습니다.(중국에는 우리의 모습과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종교지도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20층이 넘는 초호화 빌딩 호텔, 마치 유럽의 어는 고궁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시설, 또 도시전체가 건설 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서안의 모습과 달리 예배당의 모습은 10여 년 전 연변에서 본 그것과 너무 흡사했습니다.
100년이나 넘게 지켜온 듯 한 종탑, 그리고 그 끝에 메달린 줄을 당겨 울리는 종소리,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못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긴 나무의자, 조율한지 몇 년이나 지났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쓰지 않았음을 바로 알 것 같은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 소리, 어설픈 반주, 붉은 아크릴로 만든 통 십자가, 황금색의 글자, 검게 보이는 회벽, 바로 곁에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나는 역한 냄세........., 그 모두가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마당에 들어섰던 기억 하나하나를 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정겨웠습니다.
진시황의 병마용, 당나라시대의 부용원등 과거 중국의 서쪽의 서울(서경-서안)이라는 권력과 호화의 극치를 달리다가 이제 1천만이 가까운 인구를 자랑하는, 전 도시가 마천루에다 자동자로 길을 메운 서안(몇년전에만 해도 자전거나 오토바이였는데...)과는 달리 예배당의 모습은 남아있는 중국 근대사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다음날 비행기로 두 시간 정도를 남동쪽으로 달려 항주(항저우)에 도착한 것은 새벽미명이었습니다. 전날 분위기와 사람들에게서부터 취한 기운이 채 가시기 전 도착한 곳은 서호로 유명한 남쪽 도시였습니다. 어제의 날씨와는 달리 반팔, 가벼운 티셔츠가 맞는 시간을 느끼면서 넓은 나라 중국을 다시 느꼈습니다.
서호 인근 산속에 자리 잡은 호텔은 그야말로 숲속에 별장과 같은 곳이었고.......
최신식이라기에는 조금은 고전적인 모습이 서안과는 달랐습니다.
그런데 첫날 100주년 감사예배에서 자지러지게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지요. 드럼과 전자오르간에 맞추어 젊은 남자, 여자 등이 조를 이루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교회의 광란(?, 말이 너무 과했으면 용서 바랍니다. 기독신자인 필자 역시 그렇게 밖에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예배 시작 전 분위기 살리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박수치고 목에 핏대를 세워 알아듣지 못할 말로 노래를 부르면서 연호하고 따라하라하면서, 자리에 일어서섯다 앉았다 하는 모습은 잠시 중국이라는 곳을 잊게 했습니다.
여기저기서(전 세계에서 최소 10여 개국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어떻게 따라 해야할지 주춤거리며 당혹해 하는 모습이 연출됩니다. 흑인이 대부분을 이룬 일부 미국 교회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익숙한 미국인마저도 양손을 옆으로 들며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같은 듯 매우 다른 두곳의 모습 특히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모습-침묵의 행진과 감격의 소용돌이-은 오늘 우리나라의 교회에서 배웠거나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파견된 사람들이 가르친 것이 분명하고(그렇다는 이야기도, 또 우리나라의 모모교회의 목사의 설교나 예배의 모습을 테이프를 통해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디다)…….
물질주의식의 확대지양의 예배방식이 중국 땅에 까지 번져 이리 당혹하게 하는 것.
마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청껏 고함을 지르고 말로써 동조해 주기를 강권하며 홀로이 감격해 하는 모습.
안타까움을 넘어 가련한 생각이 넘칩니다.
무엇보다 100주년 중국에서 YMCA라는 종교적인 시민운동단체가 변질되어온 모습.
평생을 YMCA와 같이 산 생활이었는데도 매우 낮선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