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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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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 보았다”는 말이 시중에 우수갯소리 처럼 들린다.
이는 노인을 폄하(貶下)하고 소외(疏外)시키는 서운함에서 비롯된 현실사회를 풍자하고, 꾸짖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 오늘날의 노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 나라에서 또는 땅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다. 억겁 (億劫)의 세월 속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은 나라잃은 36년간을 온갖 고통과 설움을 삼키며 암흙같은 세월을 살아야 했고, 광복의 환희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동족 상잔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비극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잿더미의 폐허 속을 헤치면서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목놓아 울부짖으면서 국방과 재건의 짐을 양 어깨에 둘러매고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토록 피땀 흘리며 노력해온 세월이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국민소득 3만불과 선진국 대열로 가는 기초를 닦았다. 누가 이를 부정할 것이며, 감히 폄하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같은 현실의 부에 대해 공짜로 얻은 것처럼 여기는 일부의 인식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얼마 전 어느 중견 정치인이 노인을 폄하하고 소외하는 듯한 발언은 당시를 살아온 이들에게 국민적인 분노를 금치 못하게 했다. 정치인들의 노인 폄하발언은 처음이 아니기에 단순한 말의 실수가 아니질 않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말의 실수나 행동의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할 줄 알아야 지성인이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면 이는 자아도취의 빠진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이같은 말을 풍자한 ‘너는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 보았다!’는 말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한다.
그렇다.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늙게 되고, 늙게 되면 몸과 마음이 젊은이 같지 못함은 당연한 인생의 이치다. 그러므로 지난 날 우리 역사의 온갖 희비를 가슴에 품어안고 살아온 그들을 침소(針小)평가 하거나 폄하 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산증인으로 존중하고 받들며, 그들의 지혜와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계승하는 등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90세, 100세 시대의 삶도 늙음을 향한 속도는 나이에 정비례한다고들 하지 않았는가.오늘의 젊음도 언젠가는 노인이라는 세월의 길을 비켜갈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오늘의 젊음을 회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