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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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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과학문명이 날로 발달하면서 비로소 100세 시대가 열렸다.
사람은 누구가 오래 살고 싶고, 사는 동안 행복하기를 갈망한다. 아무도 이러한 대 명제에 대해 반론을 펼 이는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부단한 행진은 계속된다. 인간 최고의 값어치이면서 동시에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영세불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자필멸만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100세 시대를 아무리 반기고 즐거워한다고 해도 유한한 인간 수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행복의 수치를 두고 삶의 값어치를 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수치는 결코 부나 지위에 있지 않다.
천석을 채우기 위해 한섬을 구걸한다는 이야기라든지, 말 타면 사람을 앞세우고 싶어 한다는 말은 모두 물욕과 명예욕에 도취된 이들의 허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므로 행복의 수치는 지나친 물욕과 허영심으로부터 해방되고,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로부터 찾아야 한다.
그래서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의를 잃는 것은 절반을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고 했지 않았는가.따라서 지나친 물욕과 명예욕은 건강을 헤치게 하고,건강을 잃게 되면 세상사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해도 무용한 것이다.
100세 시대를 보람되고 즐겁게 산다는 것은 곧 행복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 행복은 건강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이 곧 행복의 지수가 되는 것이다.
인간 70, 고래희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걸맞게 적응할 몸과 마음을 가지는 것이 참다운 100세 시대를 사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강을 잃고 병상에서 추억과 향수에 젖어 제아무리 몸부림 쳐도 지나간 후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배풀고 용서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100세를 맞이하는 삶이 참되게 100세 시대를 사는 지혜일 것이다.
어느 노 교수는 사람이 25세까지는 배우고 준비하는 시기이며, 25-50세는 활동하는 시기이고, 50-75세는 참회하고 반성하는 시기이며, 75-100세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기라고 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이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인생의 끝자락으로 여겨야 한다. 그래서 첫째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남의 눈치나 보고, 체면을 생각하는 생활에서 탈피해야 한다.
둘째, 매듭지워졌던 모든 것을 접고, 자유롭게 살아야 하고, 무소유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100세 시대를 즐겁고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살면서 세인들로부터 박수받고 환대받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설 때와 앉을 때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는 100세 시대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