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명들에 붙여진 이름에는 때로는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할 그런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가 하면 때로는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현재 살고 있는 마을들에 수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와 유래, 전설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지역에 대한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지에서는 각 읍면동별로 현대화의 물결에 사라진 마을을 재조명하고 지명의 유래와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미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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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곡동의 과거와 현재 (위1991.10, 아래2005.9) |
봉곡동(蓬谷洞)은 북봉산(北峰山) 기슭에 자리한 다복(多福)과 성남(星南), 장현(長峴), 갓골 등 4개(個)의 자연부락(自然部落)으로 형성(形成)된 전형적(典型的)인 농촌(農村)이다.
북(北)으로 고아읍(高牙邑)과 경계(境界)를 이루고 서(西)로 부곡동(釜谷洞)과 접(接)하며 남(南)으로 선기동(善基洞), 동(東)으로 도량동(道良洞)과 접(接)하고 있다.
마을에 펼쳐진 들판을 가로 질러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로, 국도가 동(東)에서 서(西)로 나란히 자리하며 우뚝솟은 금오산(金烏山)이 정면(正面)에 마주하며 큰 밥상을 안은 듯 한층 더한 정기(精氣)를 느끼게 하는 소박(素朴)한 마을이다. 행정구역(行政區域)으로 봉곡동(蓬谷洞)은 선기동(善基洞), 수점동(水店洞)과 합(合)하여 선주동(善州洞)에 편제(制)되어 있다.
►蓬谷(다붓, 다봉)
다봉산 아래 밀양박씨 경주공파가 집성해 거주하던 곳인 다붓은 경주인(慶州人)노종선(盧從善)이 이곳으로 이거(移居)했고 북봉공 (北峰公)의 외손(外孫)밀양인(密陽人) 박수홍(朴守弘)이 외가인(外家人)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호(號)를 봉곡(蓬谷)으로 했다. 다봉(多峰)이 방언으로 변해 다붓, 다복으로 불리어졌다고도 하고 쑥대가 많아 다붓이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1916년~1923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지번 중심으로 토지측량을 하면서 박수홍(朴守弘)의 백호(白號)를 따 봉곡(蓬谷)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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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열비각 |
현재 밀양박씨 경주부윤공파 종중 봉곡재 내에 효자 박진환, 열녀 양주조씨 열녀 함종 어씨 행적을 기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과 편액을 보관한 조선시대 비각인 효열비각이 있다. 효자 박진환은 경남 밀양 사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했으며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장자이다. 아버지가 상주에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간병했으나 보람 없이 죽었다. 박진환은 3년간 몸을 돌보지 않고 시묘(侍墓)살이를 한 후 병을 얻어 46세에 죽었다. 1681년(숙종 7)에 정려가 내렸다.
열녀 양주조씨는 효자 박진환의 3대손 박항령(朴恒齡)의 아내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조태방이다. 병고에 시달리던 남편을 극진한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34세에 죽자 이튿날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1729년(영조 5)에 정려를 내렸다. 열녀 함종어씨는 효자 박진환의 8대손 박래은(朴來殷)의 아내이다. 남편이 1811년(순조 11) 갑자기 죽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이듬해인 1812년에 정려가 내렸다.
►星南(별남)
북봉산 아래 현재 봉곡초 봉곡중 일대인 星南(별남)은 처음에는 소가 풀을 먹으며 자연과 산다는 뜻인 멱우(覓牛)골로 불리었다. 병조참판을 지낸 벽진인(碧珍人) 이민선(李敏善)이 1616년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정착했다. 이때 상질과 상일, 상집 3형제가 아버지를 따라 함께 내려왔다.
조선조(朝鮮朝)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예학사상가인 김장생 선생의 동문인 벽진인(碧珍人) 김상일(李尙逸)과 그의 아버지인 벽진인(壁珍人)이민선(李敏善)을 만나러 이곳에 내려와 이틀을 지냈는데 이때 새벽에 일어나서 금오산인 남쪽 하늘에서 큰 별이 빛나는 것을 보고 이곳을 별남(星南)이라 불렀다고 한다. 즉 우암 송시열이 별남이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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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준 정려각 |
별남마을 입구인 봉곡도서관에는 효자 이명준의 정려각이 있다. 이명준은 벽진인으로 자는 성중 호는 성괴제이다. 북봉공 민선의 9세손으로 아버지가 별세하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3년간 시묘하니 닿은 곳이 구덩이가 되고 절한 자리의 풀이 말라 죽었다 한다. 부친 별세후 노모를 34년간 직접 시탕하고 극진히 봉양해 94세까지 수를 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삼우에 약탕관 그릇이 저절로 깨졌다하니 효성에 의함이라 한다. 헌종 13년 효자 정려를 내려 만인의 귀감이 되도록 했다.
이곳에는 북봉산 아래 경주노씨가 정착해 살았을 때 정자인 서정골, 즉 서당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세양청마루 뒷 골짜기에는 물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약샘골이 있었다. 이 약샘골 위에 만미골(萬民)이 있는데 이는 만명이 와서 물을 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에도 봉곡도서관 내에 똘뺑이, 부곡골프장 인근 샘터곡, 봉곡중 앞산 끝에 태봉뫼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 경계석으로 추정되는 큰 바위가 하나씩 있었다. 똘뺑이는 엄마바위와 아들바위가 산에서 현재의 자리까지 걸어 내려왔다고 전래된다. 이 바위를 건드리면 우환이 생긴다고 하여 봉곡도서관을 지을 때도 바위에 손을 못댔단다. 현재 엄마바위 옆에 아들바위는 없어졌다.
또 부곡 골프장 인근의 새터곡에는 수원백씨 딸이 바위 앞에서 소변을 보고나니까 바위가 점점 솟아올라 이를 보고 바위도 큰다고 말하니까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멈췄다고 전래되는 큰 바위가 있다.
북봉산 주맥으로 제일 좋은 자리인 봉곡중 앞 산 끝의 태봉뫼(임금의 태를 묻은 자리)에도 경계석인 큰 바위가 있었는데 택지개발을 하면서 깨져 두 조각이 났다. 이곳은 누가 봐도 명당자리였다고 한다.
이곳 3개의 바위가 그리는 삼각구도 안에 고인돌이 발견됐다는 것으로 미뤄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장고개(長峴)
장고개(長峴)는 옛 구미시장(龜尾市場)가는 고개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고개라 불렀으며 이 고개가 길다는 뜻에서 장현(長峴)이라고도 했다.
►갓 골(冠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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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우총 |
현재 선주원남동 주민센터 뒤쪽 부근인 갓 골(冠谷)은 일선평민(一船平民)이 살던 부락(部落)이였는데 어느 때 관예(冠禮)를 한적이 있은 후부터 관곡(冠谷)이라 했다고 하며 마을의 변두리(邊) 즉 갓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도 전한다. 또 이곳 지형(地形)이 꼭 의관(衣冠)처럼 생겼다하여 불려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갓골에는 짐승으로서 의행(義行)을 한 소의 무덤이 있었다. 조선 말기 이곳에 거주한 여양인(驪陽人) 진숙발의 처 밀양박씨는 빈곤한 처지에 일찍이 과부가 됐다. 이러한 형편에 암소 한 마리를 길러오던 중 송아지를 낳은 지 불과 사흘 만에 불행히 어미 소가 죽고 말았다. 밀양박씨는 어미를 잃은 송아지를 불쌍히 여겨 그대로 놓아두면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밀양박씨는 흰죽과 나물죽을 끓여 손에 발라 송아지로 하여금 핥게 했다. 간혹 보리죽도 먹여가며 근근이 어린 송아지를 키우자 송아지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 후 송아지는 소로 성장해 2년 동안 밀양박씨와 함께 논밭을 경작했다. 밀양박씨는 늙어 세상을 떠나기 전 소를 개령(開寧) 사람에게 팔았다. 밀양박씨의 장례를 지내는 날 상여가 출발하려 할 때 우리를 뛰어넘은 암소 한 마리가 난데없이 30리 길을 달려와 상여 앞에서 눈물을 흘리더니 미친 듯이 부르짖고 날뛰다가 상여 앞에서 죽고 말았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소의 기특함과 기이함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의행(義行)은 인간의 충의(忠義)에 못지않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과 짐승이 다르나 그 의(義)는 같아 기이하게 여겼다. 이리하여 죽은 소를 밀양박씨의 무덤 아래에 장사하고, 표석(表石)을 세웠는데, 바로 의우총비이다. 천안문 인근에 봉분과 표석이 함께 남아 있었으나 주거 단지 개발로 인해 현재 봉분은 없어지고, 다만 표석은 도시 계획에 의한 구획 정리 작업으로 봉곡도서관 입구에 있었던 솔밭에 옮겨져 있다가 다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이명준 정려각 앞에 재조성돼 있다.
<자료제공>
이종립 벽진이씨 모선재 자문위원
벽진이씨 평정공후 판관공파 종중 어르신들
박세진 구미시의회 의원
<참고자료>
사진으로 보는 20세기 구미의 모습(구미시· 구미예총)
구미마을사(구미문화원)
향토문화대전
안샘, 밤새우고 쓰시느라 눈이 부으셨겠니다.
앞으로도 뜨거운 열정으로 기사 쓰시기 바랍니다.
승진도 하셨으니 불철주야 뛰세요 안샘
01/29 17:59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