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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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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배 몇 척이 자멱질을 하는 칠십리 해안선을 돌아들면 멀구슬 나무가 포개안은 샘물이 있었고, 물을 길어나르는 아낙들이 휘어져 돌아드는 골목길을 낀 곳에는 아름드리 귤나무가 우거져 있곤 했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귤나무는 대학나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귤이 귀했던 그 시절, 값이 비쌌던 귤은 뭍으로 나간 아들딸의 학자금을 마련해 주는 효자역을 충실히 해냈다. 이래서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었다.
탐스럽게 익은 노란 귤을 거둬들일 무렵이면 무던히도 많은 눈이 내렸다. 눈길을 따라오른 한라산의 설원은 아련한 유토피아의 풍광이었다. 이 뿐이 아니었다. 노랗고 하얀 인동꽃이 그 아름다운 백록담의 설원을 한웅큼씩 집어삼키는 봄햇살을 앞세워 동구밖으로 들어서는 모습은 ‘슬픈 아름다움’에 다름 아니었다.
서경적인 아름다움과 서정적인 슬픔이 혼재한 초봄날의 유년시절, 아버지는 으레이 뼛속 깊이 눌러앉은 묽은 기침을 토해내며, 전정기구를 들고 귤원으로 걸어 들어가곤 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톱질을 해 댈 때마다 팔뚝만한 가지들은 여지없이 잘려나갔고, 내달려가 아버지의 굵은 손목을 부여잡은 이는 어머니는 가슴을 도려냈다.
“하필 꽃무더기를 무더기 피워올릴 튼실한 나뭇가지를 왜 자르느냐”며, 매달린 눈빛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했다. 그 나뭇가지에 한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가지치기를 하는 초봄부터 시작된 두 분의 갈들은 꽃이 만개하는 늦은 봄으로 이어졌고, 늦은 여름에는 절정을 이뤘다. 튼실한 가지를 무더기 잘라내며 불협화음을 낸 아버지가 무더기 피어있는 꽃송이는 물론 알알이 맺혀있는 열매들을 따내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매년 초봄마다 늦여름까지 벌어지는 두 분의 갈등 속에서 필자의 마음은 늘 어머니에게 향하곤 했다. 튼실한 가지가 더 많은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귤이 트럭에 실려 동구 밖을 나서면 첫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해 초겨울도 그랬다. 휘감아 도는 고개 저 너머로 트럭을 떠나보낸 그날 밤, 휘영청 취기를 몰고온 아버지는 중학생인 필자를 앉힌 후 디짜고짜 물었다.
“너는 지금, 아비의 손가락을 보고 있느냐, 아니면 손가락이 가르키고 있는 밤 하늘을 보고 있느냐”
아버지가 두려웠던 필자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손가락만을 쳐다보았다.
“손가락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르키고 있는 저 밤하늘을 쳐다보거라. 그래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선문답을 마친 아버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모든 가지에게 골고루 햇볕과 바람을 스며들게 하는데 있다. 눈앞의 이익만을 노려 꽃과 열매를 솎아주지 않는다면 수량은 많아지겠지만 질이 나빠지는 법이고, 힘에 부친 가지가 부러지는 법이다. 웃자란 나무 역시 잘라주어야 2-3년 후에는 음지의 가지들이 햇빛을 먹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지 않겠느냐. 음지를 가린 가지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도 혼자 햇빛을 독식하는 가지를 잘라주어야 하는 법이다. 당장의 이익만을 쫓기보다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골고루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란 모든 가지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혀야만 결국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겠느냐.“
닭이 훼를 칠 새벽녘까지 알쏭달쏭한 아버지의 언변은 계속되곤 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르키는 달을 보라”는 견월망지(見月忘指)의 의미를 깨우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후 였다. 당시 아버지는 어머니의 편을 들고 나서는 아들을 앉혀놓고 사물이나 형상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어머니와 필자를 점쟎게 타일렀던 것이었으리라.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뜻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기대섞인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정부가 올해 초,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공식화 하면서 비수도권 민심이 흉흉하다. 규제가 완화되면 수도권에 모든 경제적 역량이 집중 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 지금 당장 어렵기 때문에 긴급 처방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피상적인 방안의 하나로 수도권 규제완화를 평가 절하한다면 경솔한 탓일까.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진통제식 처방보다 진통이 있더라도 정확한 처방을 한 후 걸맞는 의료시술을 적용해야 한다면 필자의 거만함일까.
“열매가 많이 달리는 가지를 더 튼실하게 하기 위해 당장에 열매가 열리지 않을 가지를 짜르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보면서 견월망지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가지가 튼실하다고 해서 더 많은 열매가 맺히도록 한다면 결국 힘에 부친 가지는 부러지기 마련이고, 열매 또한 상품적인 가치를 잃는 법이다. 햇볕이 잘 들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는 기본적인 가지치기 기술은 국가 경영의 기본 지침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일시동인(一視同仁) 의 철학관을 가져야 한다, 만물을 하나로 보고 사람(수도권이나 비수도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에 대해 정부에서는 솔깃한 명분을 들고 나오고 있다. 비수도권에 대한 편향적 정책을 펼 경우 수도권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결국 수도권에 있는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거나 규제로 인한 불이익 때문에 국가 간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렇치가 않다. 열매가 많이 맺히는 가지만을 편애하다보면 머지 않아 가지가 부러질 수 이는 법이다. 그때 가서 빛에 가리고 바람벽에 갇혀 살아오면서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가지를 살리려고 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당장은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비수도권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래야만 미래 이 나라의 신성장 동력이 존재할 것이 아니겠는가. .
제 아무리 돈 되는 물량을 싫은 배가 균형을 잃을 때는 수리를 위해 회황해야 한다. 당장의 실리를 위해 무리한 항해를 한다면 배 전체가 깊은 수심에 수장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음지의 가지에게 햇빛을 들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기 위해 과감하게 웃자란 가지를 쳐내는 미래지향적 가치관이 필요한 시기이다.
오늘 하루만 배불리 먹고, 내일 아침은 굶을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