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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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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윗 옷깃에 단 세월호 희생자를 추념하는 상장(喪章)인 노란 리본 뺏지에 대해 주위의 수근거림을 듣습니다. 경상도라는 특색이 있는 이지역이 아니면 듣지도 않을 이야기들과 눈총을 느낍니다. ‘아직까지 달고 있느냐?’ ‘그만하면 되었지 않느냐?’ ‘그래서 더 이상 어쩌란 말이냐?’ 등의 피아를 구분하는 듯한 이야기와 마치 여당 정치인의 말이 곧 지역의 정서인 이 지역에서는 맞지 않는 모습이라는 핀찬도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지역, 아니 우리지방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노란 리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심지어는 행정관청에서 마져도 그 흔적은 없어지기 시작했고 가끔, 정말 가끔 차량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의 흔적이나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러움을 느낍니다.
특히 얼마 전 대구에서 모 청소년 단체가 주최한 청소년 쉼터의 개소식 후 뒷 자리에서 그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노란 뺏지를 아직도 달고 다니네요?’하면서 핀찬인지 아니면 비아냥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고는 답도 듣지않고 고개를 획 돌려버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부에서 위탁한 청소년 쉼터 개설 자리에서 청소년의 아픔을 이리 표현한 그분의 모습은 하이드와 지킬 박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또 하나 뉴스타파는 ‘세월호 인양 업체로 선정된 상하이샐비지의 현장조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인양 입찰 평가에서 기술평가 최고점을 받았던 업체는 네덜란드 스미트와 국내 코리아샐비지 컨소시엄이었던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정부가 인양 비용을 낮추는 데만 몰두하다 최선의 인양 방식을 놓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세월호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이 우리나라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을 모두가 한 입으로 말했지만(심지어 대통령도 눈물을 흘리며-진짜인지, 연출이었는지 모르지만-약속했지만) 아직 아무런 결과도 확인된 내용도 없이 성급하게 마무리하려는 태도는 역사적인 비난을 사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저는 가난했던 시절 그러니까 60년대, 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배고픔이나 가난의 이야기는 누구나에게서 였지만 그 문제로 인해 절망하고 비통해하기 보다는 잘 살수 있는 내일에 대한 생각이 더 앞서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떻게 하면 공납금이 적게 들까하여 사법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의과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돈을 가장 많이 벌수 있다는 산부인과를 택하고, 그래서 그와 연관된 문제가 많았던 탄광 개발이 있던 지역에서 산부인과를 개설하여 친구들 중에는 가장 큰 재력가로 알려진 친구가 있습니다. 번듯한 병원에다, 그 집안 전체를 살려낸 영웅이면서 친구들 가운데 가장 고급스런 취미를 자랑하고 절친했던 관계를 이어왔는데 약 10여년 동안 매년 한 두차례 전화통화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그 친구의 병원 앞을 지날 일이 있어 10여년 만에 해우했습니다. 그 친구의 얼굴에서 저의 얼굴을 느낄 정도로 ‘늙어감’을 확연히 알수 있었습니다. 최근들어까지 대통령의 상장이니, 국회의원 등 소위 유력인시임을 증명해 주는 사진이나 상장이 원장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가운에 노란 기본 뺏지가 달려있음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소위 부유층, 보수, 의사인 친구인데.....
‘그동안 소식 전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사실 그 전에 딸을 외국에 유학보낸 후 몸이 아프다며 데려왔는 데 이미 손을 쓸수가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인지라 내가 의사라면서 그 녀석을 먼저보냈다. 그 후로 내 삶은 삶이 아니었다.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식구들 모두 멀리 이사하고.....정신과 진료로부터 기독교에서, 불교에서, 심지어 무당에게 까지 가서 먼저간 아이의 얼굴을 잊지못해 몸부림쳤고, 한 쪽의 귀는 이제 거의 들리지않을 정도의 난청, 언젠가 초점없이 멍하니 하늘을 보는 습관 등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의 연결 뿐이다’라는 울음을 듣고 같이 손잡고 눈물을 뿌렸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친구의 아픔을 이제사 알게된 죄스러움과 그동안의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가시지않았습니다.
그에게 보는 보란 리본 뺏지는 가슴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집권여당의 지역 부위원장을 맡고있지만-지역에서 돈 많은 유지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며 맡아야한답디다-이 뺏지만은 뗄 수가 없네. 나는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따갑게 저려오는지를 아네’하면서 최근 들어 같은 뺏지를 단 사람이 친구라니 정말 반갑다하며 손을 잡았습니다.
세월호로 희생된 젊은이가 남의 아들이고 이젠 그만 그쳐야 할 일이라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아직도 가슴에 피멍이 든 그들의 부모를 제발 짓밟지 맙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500일, 두러나 아무일도 아닌 듯 지난간 500일의 아픔에 가족이, 뜻있는 분들의 상흔은 더 아려갑니다. 아침에 받은 카톡의 문자 ‘우리학교 학생, 교수님중 뺏지를 항상 달고 다니는 분이 교수님이 유일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말에 안타까움을 더 크게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