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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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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헨리 6세 때 영국은 프랑스 왕세자 샤를 7세와 전쟁을 치렀다. 당시 전력이 열세인 샤를은 오를레앙이란 지방에서 포위를 당해 도주를 궁리하는 등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 때 프랑스 로렌지방의 스물한 살 처녀 잔 다르크가 찾아왔다. 그는 샤를 7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잔, 너는 샤를 왕세자를 도우라고 하느님이 정하신 사람이다. 가서 적군을 제압하고 왕세자가 대관식을 치룰 수 있도록 보좌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왔다.”라고 말이다.
앳된 처녀가 남장을 하고 옆구리에 칼을 찬 체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 모두가 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 처한 상황이 너무나 궁한 처지라 모두는 잔이 하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 결론을 내리자 병사들은 용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도 전쟁을 앞 둔 경우 왕은 사제에게 신탁을 구한 후 신탁의 결과가 좋게 나오면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가기도 했다. 어떤 왕은 사전에 사제에게 군의 사기를 위해 신탁을 조작하기도 했다.
전세가 열세인 프랑스의 샤를 7세 진영에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하얀 말에 올라타 칼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선두에 나서자 모두들 말했다.
“저기 그 처녀가 온다. 예언에서 말한 처녀가 우리를 구하러 온다!”라고 모두들 소리쳤다.
전투를 지휘하는 잔의 모습에 프랑스군은 한층 더 기세가 등등해진 반면, 잉글랜드 병사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결국 잉글랜드군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프랑스군은 오를레앙 지방을 탈환했다.
승기를 잡은 샤를 7세는 전쟁을 끝내고 랭스의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잔 다르크의 소원을 뒤로하고 귀족 작위를 하사 한 후, 또 다시 잉글랜드와 전쟁 전면에 내세워 신의 뜻이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했다.
사실 잔 다르크는 야산으로 둘러쌓여 온종일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양과 소를 돌보는 로렌지방의 순진한 처녀였다. 사람의 내왕이 없는 마을이 어둑어둑해지면 작은 시골성당에서 몇 시간이고 무릎을 꿇고 제단 위에 타고 있는 희미한 등잔불을 보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일상이다.
당시 무지한 시골사람들은 종종 미신을 믿기도 하고 구름이나 안개가 자욱한 경우 산속에서 본 풍경을 귀신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잔 다르크도 그러한 환영을 본 것이다. 그런 환영을 보는 증상은 비교적 가벼운 정신질환이도 하다.
잦은 전쟁에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전하는 말도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결국 잉글랜드와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화형을 당했다.
얼마 전 터키 해변에 밀려온 세 살 배기 아일란 크르디 시리아 난민소년의 죽은 모습이 찍힌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해변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죽은 사진에 온 세계는 공분을 했다.
그 동안 난민문제에 문을 굳게 닫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유럽이 문을 활짝 연 것이다. 각 국은 다투어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정치적인 문제와 기아 등으로 조국을 등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난민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최근 중동사태의 혼미에 따라 2011년부터 쿠르디와 같은 난민은 이루 말 할 수없이 많을뿐더러 매년 죽어가는 사람도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난민 거부라는 단단한 벽도 세 살배기 소년의 비극적 사진 한 장에 의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한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에서 뜻밖의 사건에 의해 국면이 바뀌기도 한다.
▸참고문헌: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