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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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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대가 혹은 악의 교사로 불리었다. 심지어 1527년 그가 죽은 지 40년 쯤 지났을 무렵에는 공공의 적으로 몰려 사악함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런 그가 군주론을 집필한 동기는 좀 독특하다. 당시 교황 알렉산데로 6세는 이탈리아 중부의 로마냐 지방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아들 체사레를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풍전등하에 몰린 약소국 피렌체 공국 제2 서기장이었던 마키아벨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우아한 냉혹한’이라는 별명을 가진 체사르를 상대로 외교적 협상을 위해 파견되었다.
자신의 나라를 향해 진격해 오는 적장 체사르와 맞서 협상을 하면서 그는 적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탁월한 전략과 협상수완 그리고 지도자로서 목적 달성을 위한 냉혹함을 갖춘 적장을 롤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군주론을 집필했다.
한편 이탈리아 중부지방 정벌의 끝을 향해 가던 약관 27세 영웅 체사르를 몰락시킨 것은 적군도 아니요 부하의 배신도 아닌 모기 한 마리로부터 왔다. 1508년 이탈리아 여름은 무척 덥고 당시 더러운 물은 말라리아모기가 서식하기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정점으로 가던 영웅 체사르 아버지인 알렉산데로 6세 교황이 말라리아로 죽은 지 며칠 후 그도 그렇게 허무하게 갔다.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제국을 세운 알렉산드로 대왕은 젊고 재능 있는 왕이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전쟁으로 정복지를 넓힐 때마다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느끼면서도 나중에 자신이 정복할 지역이 남지 않을까 걱정 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그는 그리스를 평정한 후 소아시아 정복과 페르시아와 이집트을 정복한다. 이집트를 정복한 기념으로 자신의 이름을 따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도록 명하고 완공을 보지도 못한 체 인도로 출정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단 한 번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그는 카스피 해를 포함하여 이슬람 세계를 전부 정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기원전 323년 여름 말라리아에 걸린 그는 열흘 내내 고열에 시달렸다. 한 시대를 호령하며 전 세계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한 정복 왕 이었지만 3mg 밖에 안 되는 모기 한 마리를 이겨내지 못해 33세 나이에 자신이 건설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묻혔다.
작금의 지역 모 국회의원은 장래가 촉망받는 의원이었다. 어린시절 혹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고시에 합격한 그는 입지적인 인물로 남의 부러움을 받았다. 더군다나 정부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한 후 자신의 고향을 뒤로하고 구미에 출마했을 때 시민들은 그의 능력을 믿고 몰표를 몰아주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구미공단 구조고도화 사업. 북 구미 인터체인지 유치 등 많은 일을 했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의 재선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거칠 것 없이 권력의 정점을 향해 가던 그를 가로막은 것은 성적 스켄들 이었다. 국민은 지도자의 도덕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일탈과 모기 한 마리가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운명의 장난(Fortuna)"이라고 했다.
초록은 동색이라... 성정규씨 성학봉씨 손잡고 고만 구미를 떠납쇼 ...
10/13 14:50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