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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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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홍도의『부신초동도』에 화제(畵題)를 쓴 그림이다. 그는 산수ㆍ도석인물(道釋人物) 풍속ㆍ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화풍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화원집안인 외가로부터 천부적 재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어려서는 안산에 칩거 중이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20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으며, 28세 때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에서 근무했다. 1777년 별제로 있으면서 강희언(姜熙彦)ㆍ김응환(金應換)ㆍ신한평(申漢枰)ㆍ이인문(李寅文) 등과 함께 그림제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781년에는 한종유(韓宗裕)ㆍ신한평 등과 함께 정조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 도사의 동참화사로 활약하고 그 공으로 안기찰방을 제수 받았다. 이 무렵부터 명나라의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라 단원(檀園)이라 자호했다. 1791년에 다시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정조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그해 겨울 연풍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 정월까지 봉직했다.
이 그림은 나무꾼을 그린 그림이 있다. 부신초동 즉, 땔나무 진 나무꾼 소년이란 제목이며, 그의 말년의 작품으로 전한다. 땔나무 지고 돌아가는 소년들의 등에 쌓아 올린 나뭇가지들이 그들의 몸보다 크고도 높다. 소년들은 알 리 없다. 겨울 산에서 나무하고 돌아가는데 저 멀리 등불이 반짝이고 사람 소리 들린다. 늦도록 등을 밝혀 백성들이 편안하게 일하도록 도와주었다던 어느 지방관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 등불은 어린 나무꾼의 발길을 안내하는 등불이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다정다감 서로서로 보살피는 목소리며, 보리밥에 다독이는 아련한 소리다. 등불이 멀어도 돌아갈 곳이 있기에 소년들은 발길을 재촉한다. 그림 속 등을 돌리고 가는 소년은 앞질러 서두르는 모양이다. 눈 쌓인 산허리 길로 세 소년의 커다란 지게가 내려가고 있다.
▶김홍도의『부신초동도』에 화제(畵題)를 씀
樵歸雪嶽山腰路, 人語燈深樹裡村. 눈 내린 산허리 길로 나무꾼이 돌아오는데, 나무 덮인 마을에서 희미한 등불 아래 사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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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 김홍도의『부신초동도(負薪樵童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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