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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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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정선(鄭敾)의『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에 제시를 쓴 그림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 남종화의 대가들을 깊이 연구하고, 중국의 각종 화보(畵譜) 등을 섭렵해 새로운 개념과 기법을 습득했던 그는 이를 바탕으로 단순히 한국의 산천을 그린 이전의 실경산수(實景山水) 전통과는 구별되는 진경산수(眞景山水)라는 독자적인 예술형식을 창출, 조선의 화성(畵聖)으로 불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확인되는 중국의 남종(南宗) 화법과 절파계(浙派系) 화풍의 필묵법 등을 자기 식으로 소화, 재해석해 낸 그의 독특한 화풍은 그가 조선의 산천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밑바탕이기도 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쓰여 있는 제시(題詩)처럼 절벽 사이로 폭포의 물살이 세차게 떨어지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여산(廬山)은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서남쪽에 있는 유명한 산이다. 주(周) 나라 무왕(武王)때 광속(匡俗)이라는 도사가 숨어 살던 곳으로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찾았더니, 이미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 빈집만 남았으므로 여산이라 하였다한다. 그림에서 폭포가 흐르는 석문산(石門山)은 여산에서도 서남쪽에 있다. 그림내용은 이백(李白)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라는 시(詩)를 그린 것이다. 필치의 구사가 능숙하고 힘이 있어 60대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선(鄭敾)의『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에 제시를 씀
長松鬱立千兵列, 怒瀑急噴萬馬暄. 긴 소나무 울창하게 서 있으니 천 명의 병사들이 도열한 것 같고, 성난 폭포 급하게 뿜어대니 만 마리의 말들이 울부짖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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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謙齋)정선(鄭敾)의『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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