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193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최초 실험심리학 교수였던 프레더릭 바틀렛(Frederic Bartlett)은 북미인디언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사람에게 들려주고, 그것을 들은 사람은 기억하였다가 제 3자에게 들려주고, 또........ 7명까지 이야기를 전달하게 한 후 이야기는 처음의 내용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을 통하여 기억에 의존하여 전달되는 말의 진실성이란 '이야기가 전해질수록 실수하고 가공되면서 줄거리를 바꾸거나 세부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장기기억의 정확성'에 관한 실험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기억은 단순한, 정지된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이나 사고처럼 활동적인 과정이다'고 결론을 내립니다.(애덤 하트데이비스저, 이현정 역, '파블로프의 개', 시그마북스, 2016)
이런 기억에 관한 문제를 두고 최근 시끄럽습니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에 나타난 단 한 문장이 만들어 낸 내용이 지금의 정국을 흔들고 있는 사드배치문제를 비롯하여 청와대와 연곤된 모든 이야기를 덮어버리는 듯 합니다.
따라서 일순간에 수세에 몰리던 청와대와 정부여당에게 공수자세로의 변화를, 반드시 지금 해명되어야 할 추악한 문제들(최순실과 미르재단, 그녀의 딸과 삼성, 청와대 민정, 경제수석의 문제 등)에 대한 민심가리기에 충분한 보자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에 관한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2016년 10월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윤영석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기억) 내용을 열거하면서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관여해 유엔 총회 표결에서 우리 정부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에 물어보자고 결론 내렸다”며 “이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중대한 문제다. 북한 동포가 압제에 시름하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외면하는 기권 결정을 하는데 북한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고 하면 부끄럽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북한 정권의 눈치 보기가 극에 달한 사례가 아니냐”고 따진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그러자 시체를 보고 득달같이 달려가는 늑대 떼처럼 정진석 원내대표는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이는 주권 포기이자 심대한 국기 문란 행위”. 이정현 대표는 회의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대한민국 주권 포기 사태이며 안보와 관련된 일에서 종북 좌파의 행태를 취한 더민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의심된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김정은 정권에 협력하고 동조하는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며 문 전 대표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고, 강석호 최고위원은 “범죄자에게 어떤 처벌을 원하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중대한 국기 문란 사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0월16일 이에 대하여 문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더민주 의원은 “문 전 대표는 ‘찬성’ 입장이었다”고, 10월17일 문 전 대표 당시 일을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는 ‘기권’을 주장했을 것 같은데 다 (내가) 그렇게 (찬성)했다고 하는데 모르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10월18일 박지원 국민의 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송민순 회고록에 대해서 문 전 대표가 3일간 계속 말씀을 바뀌고 있는 것이 문제, 어제는 ‘기억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 문재인 전 대표께서 당시 관계자들과 협의를 해서 명확한 사실관계를 국민 앞에 밝히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양비론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점입가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 합니다. 10월20일 남경필 지사는 “문 전 대표가 나서서 빨리 논란을 종식해야 한다” 며 ‘대통령의 자격 문제를 거론했고, 이에 대하여 당시 회의 멤버 통일부장관 이재정(현 경기도 교육감)은 "잊어버릴 수 있었다" “문 전 대표는 사실상 회의 멤버가 아닐뿐더러 회의장에서도 왔다 갔다 하고 전화도 받았다. 청와대(대통령)에 수시로 연락해야 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회의에서 자신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처음 회고록에 나오는 격한 토론의 대상이었던 자신조차도 “사실 나도 처음에 기억이 안 났다. 돌이켜 보고 홍익표 당시 통일부 정책보좌관에게도 물어보니까 기억이 주섬주섬 모여들어 확인됐다”며 “10년 전 일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기 책임의 회의도 아니고 정식 멤버도 아닌데, 뭐가 중요하다고 기억하겠나”라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문 전 대표를 향해 "지금이야말로 침묵이 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라고 언급하기도 했답니다.
싸움의 방향은 이제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에 대한 색깔 공세를 퍼붓고 있는 새누리당에 대해 "찌질한 정당"이라는 표현을 했고 이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찌질'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해서 우리 당을 비판했다며 "대한민국의 중요 외교안보정책을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했는가"라는 결정론을 내세워 국기를 흔든 사람으로 욕합니다.
특히 염동열 새누리당 수석 대변인은 "국기문란 사건을 두고 국민을 상대로 말장난을 하는 한심한 생태"이고 (.....) 진실이 뒤바뀌지는 않는다"며 "침묵은 '긍정'을 의미한다"면서 (.... )침묵하고 적반하장식 정치공세로 일관하며, 뭉개고 보자는 전략이 통하고 있다고 보는 모양(......) 살아있는 활화산으로 문 전 대표를 휘감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뉴시스 2016.10.16)고 강하게 쏘아 붙였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나쁘다는 이유가 바로 싸움구경, 불구경이 흥미롭다고 느낄 때랍니다만 이용호 국민의 당 원내대변인은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다"며 원론적 입장으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입니다. 공교롭게도 10월 21일 한국갤럽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25%'로 역대 최저치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온 날 말입니다.
문득 엉뚱한 두 마디의 말이 생각납니다.
제갈량이 적벽대전에 앞서 손권을 만나 안심시키기 위해 한 '강노지말'(强弩之末, 강하게 날아간 화살도 멀리 날아가 끝에 이르러서는 비단결 한 장 뚫지 못하듯 조조의 군사는 힘이 다했다는 것)과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 "고마해라. 마이 뭇따 아이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