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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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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가 낳은 인간문화재 명창 박록주 탄생 111주년 국악대공연이 지난 13일 구미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구미시가 주최하고 (사)명창박록주기념사업회(이사장 석영복)가 주최한 이번 공연은 영상자료를 통해 박록주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박송희(국가무형문화재 제5회 ‘흥부가’예능 보유자), 이옥천(서울시무형문화재 ‘흥보가’예능보유자) 명창과 또 이들의 가르침을 받은 채수정(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명창과 그의 제자들이 출연해 판소리와 민요 등 다양한 국악공연을 펼쳤다. 또 이생강(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명인이 밀양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진도아리랑 등 우리에게 익숙한 민요를 대금 연주로 선보여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선생이 생을 마감하기 전 남긴 글에 박송희 명창이 곡을 붙인 인생백년 단가를 판소리아카데미수강생들이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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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창 박록주 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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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주 선생(1905~1979)은 1905년 1월 25일 고아읍 관심리에서 태어나 12세에 당대 최고의 동편제 명창가인 박기홍의 문하에서 판소리의 길에 들어섰다. 17세 때 서울 우미관에서 열린 명창대회에서 이름을 떨친 후 30년대에 동양극장 창극 무대의 주역이 됐다. 당대를 울리고 있던 쟁쟁한 판소리 명창들에게 두루 사사했는데 송만갑(춘향가, 적벽가), 정정렬(춘향가), 유성준(수궁가), 김정문(심청가 흥부가), 김창환(제비노정기)등이 선생의 판소릴 세계를 가꾸고 살찌워준 스승이다.
1948년에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해 국악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판소리 기량이 완숙의 단계에 들어섰던 1964년에 여성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았다. 1970년대에 정통판소리 보존 연구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65세 때인 1969년 10월 명동 국립극장에서 은퇴공연을 마지막으로 후진양성에 전념하다가 1979년 5월 26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60여년의 소리 인생을 접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동편제 소리에 적합한 호쾌하고 장엄한 목소리를 가졌던 선생은 판소리에 두루 능하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흥보가에 뛰어났다고 한다.
한편, 명창박록주기념사업회는 구미가 배출한 명창 박록주 선생의 예술업적과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전국국악대전을 개최해 국악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판소리아카데미와 '명창박록주의 삶과 예술세계' 학술대회 등을 개최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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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영복 명창박록주기념사업회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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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복 이사장은 "박록주 선생의 치열했던 예술세계를 제자 박송희, 이옥천 명창과 그들의 제자 채수정 명창과 또 그의 제자들에 의해 오롯이 이어져 유감없이 빛나고 있는 것을 공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선도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