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운동 대구경북 본부,반환운동 결의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설불좌상의 경주시로의 반환운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21일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 본부(이하 대구경북본부) 운영위원회는 지방분권운동 구미본부(이하 구미본부), 경주본부 준비위원 등과 함께 이같이 결의하고 아울러 뜻을 같이 하는 대구와 경북 지역의 모든 단체들과 공동대응을 하자고 제안했다.
▷석불좌상의 역사
청와대 경내에 석불좌상 1좌가 있다. 공식 명칭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4호이지만, ‘청와대 부처’ 또는 ‘미남부처’ 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석조좌상은 1912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합병된 지 2년 뒤인 1912년 경주를 찾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에 의해 서울로 옮겨졌다. 총독은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인 오히라 료조(小平亮三)라는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이 불상을 처음으로 만났고, 총독이 이 불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오히라는 서울 남산에 있었던 총독 관저로 이 불상을 옮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게 된 이 불상은 1927년 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다시 자리를 떠나 현재의 청와대 경내로 진입하게 됐다.
이 불상은 구중궁궐과도 같은 청와대 경내에 갇혀있다 보니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맣게 잊혀졌다. 이 불상은 1967년 4월 30일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그러나 이 불상의 존재가 세인(世人)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94년이었다. 당시 구포역 열차 전복사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 서해페리호 침몰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같은 대형참사가 잇달아 일어나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경내의 불상을 치워버린 것이 원인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청와대는 고심 끝에 그 해 10월 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을 공개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부처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당연히 “경주시로의 반환” 문제도 수면(水面)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2000년대 벽두부터 경주시의 문화재 전문가들과 문화단체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석불좌상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경주시로의 반환운동을 경주시에 꾸준하게 요청했다.
석불좌상의 경주시로의 반환 문제는 경상북도의회에서도 거론됐다. 2014년 11월 14일 행정사무감사 문화환경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 문제를 거론한 이는 경주시 출신의 이진락 도의원이었다. 그는 경주시의 3선 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경주의 문화단체들과 함께 계속 경주시에 “경주시로의 반환”을 거론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경상북도가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