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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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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는 같은 제목의 다른 책 두 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800페이지가 넘는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Empathic Civilization>(이경남 역, 민음사, 2011)이고 또 2017년에 나온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 The Age of Empathy>>(최재천 역, 김영사)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인류의 공감적 특성이 진화해온 과정을 들여다보고 지금까지 공감이 우리의 여정을 어떻게 꾸려왔으며 앞으로 하나의 종(種)으로써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살펴봄으로써 문명사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려는 시도’(서문)이며, ‘공감 의식은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를 ‘공감 뉴런 (empathy neuron)’이고 그 공감이 인류의 문명을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합니다. 또 앞으로의 경제 위기의 대하여 ‘경쟁과 적자생존에서 협력과 평등을’,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리더십은 공감적인 관계 기술로’, ‘새로운 의식은 게임의 원리를 바꿈으로 모든 생활 방식에서 변화’ 라고 전문가(경제학자)의 진단을 보여줍니다.
후자는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인강이 잘못아는 모습에 대해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합니다. 즉 인간(동물)의 본능은 사회적 다윈주의가 말하는 ‘열등한 자는 도태되고 생존 조건에 적합한 자가 살아남’고 그로인해 ‘전쟁과 테러, 권력 투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가속화되는 것’이라는 ‘생물학적 운명론’은 과학과는 무관한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영장류, 포유류, 조류 등 다양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 연구를 통해 ‘동물과 인간이 선천적으로 공감 본능을 타고났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이타성과 공정성의 발현은 결국 종의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또 전자가 말하는 ‘거울 신경세포는 인간 뿐아니라 모든 영장류, 동물에게도 있어 ‘공감은 진화적으로 동물적 본능’임을 밝히면서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면 이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책이 나온 시기나 전공분야, 주장하는 방식이나 연구내용도 다르지만 ‘공감’은 인류의 문명사를 통해, 생물학적인 분석과 과학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면서 ‘공감’만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안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감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에는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이라고 정리합니다(Empathy is the experience of understanding another person's condition from their perspective). 하고 이를 위해서는 ‘관심보이기’, ‘반복하기’, ‘감정이입하기’라는 공감의 3단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폐일언하고 이리 지루하게 공감을 말하는 이유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교만하게 외치는 인간이 동물이 나누는 공감의 현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영장류, 포유류 등을 가리지않고 모든 동물은 ‘공감본능에 작동하고 진화’하면서 적으로부터 위협이나 자신의 방어, 혹은 적응을 위해서는 최대한 그것으로 지금에 이르렀는데 인간인 우리가, 더구나 한민족 혹은 가족 이라는 우리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사실을 놓고 타투는 모습은 ‘동물보다 나은 점이 없는 짓거리’밖에 될 수 없겠지요.
9월 초순에 급배치된 사드가 대표적인 반 공감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공감할 수 없는 행동, 행위로 인해 지탄받았고 급기야 탄핵까지 당했던 대통령과 그래서 대안으로 뽑았던 대통령을 동일 선상에 놓는 일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옵니다.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반 평화를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이해해 달라는 모습에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차라리 힘없는 나라, 결정권이 없는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사드를 배치할 수 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다고,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하여 먼저 국민의 이해라도 구하는 모습은 있어야하는 것은 아닌지요? 무엇이 있어 이완용,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황교안, 김관진 등의 동일한 궤변 즉 ‘어쩔 수 없었다’로 마무리하려는지요?
바로 전쟁이 터져 작전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임시배치라면서 완전체를 구성해 놓고, 적절한 방어 효과가 아니니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수십억 달러가 넘는 무기를 도입(트럼프는 파는 것을 허락했다는 식, 내 돈 주고 빌어 먹는 꼴)하려는 것은 전, 전전 정부의 무기 대 무기의 정책의 연장이라고 밖에 해석할 여지가 없습니다.
동시에 보낸 편지에는 언급이 없다가 하루전 나머지 기기를 설치한다고 하고는 비오는 날, 야밤을 택하여 성주 군에 사는 청년의 수(20대, 30대의 성주군민은 약 9천여명)와 맞 먹는 경찰과 성주군의 버스 전체보다 많은 경찰 차를 배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꼴은......, 도대체 이것이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입니까? 4백여명에 20배 무장경찰의 완력으로 제압하려는 모습이 또 그로인해서 숱한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게하는 것이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모습입니까?
기억하십시오.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통령이 직접 팃포탯(tit for tat)이론으로 초강경 지시를 내리는 모양새는 참 보기 좋지 않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 협력 요청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완전히 아베 (일본 총리)처럼 돼 가고 있다'(연합뉴스.2017.9.8.)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을 귀담아들으시기를 간절하게 청합니다. 공감하던 사람들로부터의 불신은 비 공감인의 냉소보다 더 차가운 법입니다.
(201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