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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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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정선의『노백도(老柏圖)』란 그림이다. 그는 조선후기 화가로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으며 김창집(金昌集)의 도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위솔을 비롯하여 1729년 한성부주부와 하양현감, 청하현감을 지냈다. 1740년 훈련도감낭청, 양천현령을 거쳐 사도시첨정 · 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1756년에 가선대부 지중추부사에 제수 되어 이것은 화가로서는 최고의 대우였다. 40세 이전의 확실한 생활기록과 작품이 없어 초년기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는 어려우나 그는 18세기 무렵 중국에서 들어와 한창 유행하던 남종화법(南宗畵法)이나 오파(吳派)와 같은 새로운 산수화기법에 영향을 받았으며 금강산, 관동지방의 명승, 서울의 사계절 모습, 인왕산 등을 주요 화제로 삼았다.
그가 한국 회화사에 남긴 업적은 겸재파화법이라 할 수 있는 한국진경산수화의 전형을 확립한 점이다. 그의 화풍은 선비나 직업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주요작품으로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만폭동도 등이 있다. 특히『노백도』는 18C 전반(前半)의 작품이다. 예로부터 송백(松柏)은 불굴의 지조와 오래된 연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노백(老柏)을 그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뜻을 모두 담고 있고, 특히 나무 등걸의 휘굽은 모양이 초서체로 쓴 목숨 수(壽)자와 비슷하여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었다. 나무줄기는 윤곽선 양옆에 붓질을 중첩시켜 진하게 나타내고, 가운데 부분은 하얗게 남겨 도드라져 보이게 함으로써 둥근 가지의 입체감을 살리는 동시에, 촘촘하게 주름 잡힌 나무껍질의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당초문(唐草文)같이 꼬불거리는 가지를 따라서 빽빽이 자라난 잎 부분은 먼저 옅은 물감으로 한 겹 칠한 후 그 위에 점점으로 잎 하나하나를 가득 찍어 묘사하였다. 화면 오른쪽 위에 있는 겸재 정선의 관지 외에도 그림의 상단과 하단에는 후일에 덧붙여진 찬문(讚文)이 있다. 상단 찬문에 예백씨가 구미 이문동출신 심능태에게 준 그림이라고 기록하였다.
▶정선(鄭敾)의『노백도(老柏圖)』상단에 찬문(讚文)을 씀
謙齋筆法妙通靈, 百尺盤松老釋形. 持贈故人良有意, 歲寒心事也能靑. 겸재 정선의 필법은 오묘해서 신령과도 통하고, 백척의 반송은 늙은 스님의 모습이로다. 몸소 가지고와 주는 옛 친구 참으로 의미가 있으니, 변하지 않는 마음씨 도한 능히 푸르리라.
大來持贈禮伯氏 예백(禮伯)씨가 심능태(沈能泰, 字는 大來)에게 몸소 가지고와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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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정선의『노백도(老柏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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