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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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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구미의 모 언론에 구미시 궁도협회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을 한번 더 꼼꼼히 읽으면서 들여다 보았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공무원 시절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답이 너무 일찍 나와 버린데 대해 당황스러웠다. 아마 내가 공무원이었다면 ‘나와 관계없으니 관행대로 혹은 좋은 것이 좋다고 적당히 무마 하지는 않았을까’하는, 그러나 몹시도 안타까운 해결 아닌 해결이 답이 되어 나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그 기사를 한글자한글자 읽어 보았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민주주의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기본 바탕을 이룬 세상에 여러 다양한 의견들, 다수와 소수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는 즉 다수가 소수를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면서 다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제도라고 본다. 또한 그것은 나 혹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해도 그 기본적 근본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우리가 하루에 세끼를 먹고 살 듯이 우리 주변에서 그렇게 존재하는 공기와 흙같이 기본적인 생존의 가치가 바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1970년대부터 공직자 생활을 하였으며 2006년 2월말 구미시의 경제통상국장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임을 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구미시민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몇 차례의 시장 선거 등에 출마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살아오는 세월 속에서 내가 공직 생활을 하면서 관행이라고 믿었던 부분들이 때론 반칙이 될 수 있었으며, 혹은 특권이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관행이라고 믿었던 부분들이 지금 생각하면 비민주적인 행위 즉 우리가 고치고 개선해야하는 소위 적폐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이다. 즉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말부터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촛불처럼 이제 민주주의는 피를 먹지 않고도 실현 될 수 있는, 어느새 우리 곁으로 가까이 와버린 용어가 되었지만, 혹자들에 의하면 지금 이 시점은 차라리 ‘민주화’라는 용어조차 낯설게 바뀌어 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는 제법 민주주의 형식을 띠고 있고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소위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태는 여전히, 특히 우리 구미를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는 많이 남아있지 않나 우려해 본다.
우리 경상도 지역에서 소위 ‘남자다운 처신’이라 생각했던 대부분의 행태들이 반민주적이라는 데 있다. 우선 나부터도 부부간의 일상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고백한다. 사소하게도 부부가 함께 나가서 밥을 먹는 일부터 우리는 민주주의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 집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특히, 우리 집 며느리의 경우 고향은 강원도이며, 서울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다보니 시아버지의 이러한 점이 못마땅하겠지만 집안의 어른이다보니 아무런 얘기를 못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나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하지만,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근래 들어 매일 우리 가정에서 일상화된 소위 비민주적인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물론 쉽지만은 않지만 한 부분 한 부분 그 변화를 위해 나름 애를 쓰고 있으니 민주적인 가장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장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구미에서 민주주적이지 못한 부분이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현재 구미시에서 진행 중인 모 공원 관련 개발의 절차가 민주적이지 못한 행태가 아닌가 한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시민들을 위해서 모 공원사업과 함께 개발한다면 가장 먼저 시민들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이 우선 순서라는 생각이 든다.
공청회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제대로 사업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난 후에 개발을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하여 시민다수가 정말 필요한 사업이니 진행을 시키자고 결론이 난후에 사업자를 모집하면 되는 것이다. 잘 모르겠지만 구미시에서는 공청회 절차도 없이 사전작업을 무시하고, 은밀하게 일을 꾸며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만든 턱없이 작은 회사(그러나 법규에는 적합한 회사)에 이러한 일을 맡기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구미시에서 추진하는 모 공원개발 사업, 나는 근래 들어 가장 비민주적 처사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부터 착실하게 본 사업을 준비해 왔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말을 했다고도 한다. 전국체전을 위해 모 공원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몇 년 전에 그들이 내려왔다면, 구미에서 전국체전이 개최될 것을 벌써 몇 년 전에 그들은 알았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점점 더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대한 거짓말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일들이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이 먼저 겪었던 1960년대를 우리가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 그러한 몸살을 앓고 난후에 제대로 된 민주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 말이다. 지금 이야기한 이 끔찍한 일이 기우이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도 이미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방식에 익숙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에 일부의 저항이 있기는 하였지만 100만 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만든, 바로 성숙한 대한민국의 국민수준을 보여 준 일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과 함성을 직접 몸으로 겪지는 않았지만 4▪19혁명과 너무나 닮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4▪19와 이번 촛불집회가 닮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한 사람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종이와 현수막 등에 적어 온 것들은 그들의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즉, 예전의 일관되고 하나였던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과 형식의 민주주의로 확대 해석되고 요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짜 민주주의는 활짝 꽃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이 사람의 의견도, 저 사람의 의견도 다 맞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의 교차점을 찾아내고, 또 그만한 양보와 서로에 대한 배려에서 민주주의는 꽃이 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이제 우리가 늘 먹던 하루 세끼의 식사처럼 우리 곁에서 제대로 작용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모습을 한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늘 미안한 내 처와 우리 자식들에게도 조금은 민주적인 가장으로 다가서는 노력을 하고 싶다. 그들이 흡족해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