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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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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사건과 관련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게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주제로 제주4.3평화공원 일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고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라고도 했다.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12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 문 대통령 추념사 전문>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 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습니다.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습니다.
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김경홍 시인의 4▪3연작 시집/ 인동꽃 반지 -------
지난 2010년 5월 세 번째 시집 <그리운 것들은 길위에서 그립다>를 발간한 김경홍 시인이 8월초 시집 <인동꽃 반지> 재판을 발행했다.
시집에는 제주 4.3 사건동안 겪은 가족사의 일화가 연작시의 틀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인동꽃 반지 2판 전문>
서 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1
한 시대를 하관한 자리에
내내 머무르지 못함을 용서 하십시오
평생을 법 모르고 살며
형틀을 이고 지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당신의 눈물을 눈물 없이 생매장하고
기어이 돌아서는 이 불효를 용서 하십시오
두 남자와 정을 통한 어머니
의붓형을 팔아치운 불쌍한
우리 어머니
한 목숨을 거두어 아버지가 가신 길을
당신이 뒤따르신 그해 봄
혼자는 얼마나 외롭던 지요
얼마나 행복 하던지요
그리운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당신은 낡은 몸을 거두어 들였지만
여전히 당신은 뒷골목 곳곳에 계시네요
소금 섞인 물은 이미 물이 아니 듯
이념이 섞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어서
화사한 가슴 한 잎 만날 수가 없네요
미치도록 그리운 날이면
두 번 다시 사람으로 오지 않고
인동꽃으로 오신다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2
낙엽이 내리는 날이면 빈 가지 사이로
가끔 그려보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사십 문턱을 넘어서는 늦가을 오후
비탈길에 리어카로 서 계신 당신
가라앉은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행복을 물리치고 불행을 마다않는
우리들의 당신
그날 오후 당신을 두고 가는
사십대는 얼마나 부끄럽던 지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휩쓸리는
살아감이 얼마나 저주스럽던지요
당신의 비탈에 서는 날에야
목 놓아 부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한 시대를 생매장하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불효를 용서 하십시오
3
영영 못 오실 줄 알았습니다
조용히 눈감으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사랑의 샘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가혹 했습니다
실직이며 결식으로 뒤엉킨 거리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한 꾸러미씩 욕망을 온기 속에 감춰놓고
한파가 떠나주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봄날 아침
그만 그만한 살림이 모여 사는 변두리에서
다소곳 손 내미는 인동꽃을 만납니다
겨울의 얼음장을 툭툭 깨뜨리며
꽁꽁 언 사랑의 샘을 길어 올리며
파랗게 돌아오시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변두리가 그리워 변두리로 오신 사랑 앞에
지난겨울은 부끄럽기만 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생매장하고 눈물 없이
살아가는 사십대가 저주스럽습니다
제 1 부
1948년 3월 일본에서 돌아와 야학선생을 하시던 아버지는
20세의 나이로 토벌대에 쫓겨 한라산에 입산했다
결혼 1년 만에 4 ․ 3사건을 만난 어머니 또한 갓 돌을 넘긴 소아마비 누나를 품에 안고 고향을 등졌다.
결국 1년여의 피신 끝에 붙들린 어머니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전향서와
이혼각서를 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조부모를 학살한 토벌군인과 위장 개가한 것은 1950년의 일이었다.
섬 ․ 1
-1948년
열여덟 꽃다운 시절
눈시울 붉히는 섬을 만났다 첫사랑처럼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숨비소리
세월을 거슬러 노 저으면
밀물에 말려오는 얼굴
돌아 오마는 떠날 때 약속은
영영 그리움에 머물러
*저문동 포구 돌아들어
죄 없는 어머니가 가슴을 치고
아버지는 술병을 기울였다
열여덟 꽃다운 시절
배운 것은 노래였다
부르면 부를수록 서러운 노래
내 십대를 길렀다
헤어짐이 우리의 뜻일 수 없는 섬에서는
만남 또한 우리의 뜻일 수 없는 것
돌아 오마는 약속은
영영 그리움에 머물러
열여덟 꽃다운 시절은
눈시울 붉히는 섬 이었다
※서귀포시 해변마을, 부모님의 고향
섬 ․ 2
-물마루 바라보며
어릴 적 아주 먼 옛날
우리 할머니
물마루를 베개 삼아 살자했다
아들이 끌려가고
아들의 아들마저 끌려갔지만
착한 우리 할머니
바다를 저주하면 지옥 간다는 말끝에
자면서도 꿈을 꾸자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온다는 그리움은
바다 멀리 닻줄에 묶이고
할머니의 기다림이 턱을 괴고 앉은
물마루에 오늘은
바작바작 타드는 오징어 떼처럼
목 매달린 절망들
물마루 넘어 온다는 그리움은
기다려 무엇 하리
화롯가 하룻밤의 설화처럼 자고나면
허망한 옛 이야기
산 ․ 1
-떠난 당신
해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리움이 돌아앉아 바라보는 산은
어느새 사랑하는 당신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여
사랑으로 살아가는 당신
그리워 살 수 없고
그리움을 버리고도 살 수 없는
열여덟 꽃다운 시절
섬에 살며
산을 그리워함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산 ․ 2
산이고 싶습니다
세월을 물고 일어서는
푸르른 산이고 싶습니다
세월은 흐르며
어떤 목숨을 거두고
어떤 사연까지 거두어들이지만
여전히 푸르른
산의 영혼이고 싶습니다
먼 산이나 바라보는
이십대의 그리움이 부끄럽습니다
세월은 첫사랑의 추억을 지우며 떠나지만
흘러간 세월을 물어 여전히 푸르른
당신보기가 참 미안합니다
산 ․ 3
죽음이 산을 부르지만
산은 죽음을 받아들여
푸르른 영혼으로 살아난다
죽음이 당신을 부르지만
죽음을 받아들여
사랑으로 살아난다
죽음을 피해 다닌 내 이십대가
죽음 속으로 사라진다
어머니
그릇된 쪽은 안개 같은 세상인데
그 쪽에 줄을 대라는 어머니
난세일수록 있는 쪽에 서라는
처세술의 역사를 모를 리 있겠습니까
가엾은 어머니
얘야, 사는 일이 뜻대로만 풀리느냐
가만가만 멀어지는 타이름을 붙들어
이 생각 저 생각을 간추려봅니다
나를 낳고 나를 버리려는 어머니
개가를 하라는
불쌍한 우리 어머니
인동꽃반지
-사랑을 위하여
줄줄이 무너지는 목숨을 애도 하네
오늘의 절망에 대하여
시대를 탓하지 말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슴 가슴마다 사랑이 흐른다면
시대만을 탓하지 말자
목소리 낮추는 그대여
눈시울 붉히는 슬픈 그대여
우리가 언제까지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래 어쩐단 말이냐
언제까지 사랑을 움켜쥔 채
엎드려 있기만 한다면
이 절망을 어찌하란 말이냐
이 시대의 사랑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스스럼없이 다가서주어야 하는 것
엎드려 있는 이들은 엎드린 채
때로는 영영 죽어지내야
살아남는다고 말하지만
언제까지 엎드려 있기만 한다면
그래 어쩐단 말이냐
돌아서는 그대여
산마루 지나 떠나가는 그대여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슴 가슴마다 사랑이 흐른다면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스스럼없이 다가서 주어야 하는 것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까지
희망을 온 세상에 수놓기까지
출향일기(出鄕日記) ․ 1
돌아갈 수 있을까
날 저문 저문동 홀연히 떠나와
벼랑 끝 헤매 도네 돌아보면
한 목숨을 거두어
떠나가는 꽃상여
뒤척이다 두고 온 옛 추억 더욱 그립네
어디로 가야할까
세상이 지명(指名)한 죄인에게
하룻밤이 무사할까
가도 가도 흩어진 신발짝과
행방불명
몇 번씩 망설이는 발목을 붙들고
길을 재촉하는 시아버지 기침소리여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모녀
마을은 모두
짙푸른 향수 끌고 밖으로 나섰네
죽음을 나르는 오솔길아
죽음을 묻고 오는 그림자들아
언제까지 나는 떳떳한 아내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엎드려 지낸다면
얼마나 당당한 어미일 수 있을까
출향일기(出鄕日記) ․ 2
솔 연기 흐르는 골목길 그립네
몇몇은 남아 세상에 줄을 대고
몇몇은 또
밀고와 윤락으로 연명을 한다지만
남아 있는 생명이 쓰러지고
쫓기는 생명이 살아가는 시대
고향은 어미의 가슴처럼 소중하네
날마다 역겨운
툇마루 곰방대도 문득 그립네
뒤따라오신다던 시아버지
왜 안 오셨나
남아있는 생명이 쓰러지고
쫓기는 생명이 살아가는 시대
산 넘어 산으로
끼니를 물어 나른 시아버지 사랑이
우리모녀 울려놓네
출향일기(出鄕日記) ․ 3
사월 봄날
산비탈에 철쭉꽃 붉네
어머니 절뚝절뚝 끌려가는
동구 밖은 눈물 꽃
살아서 갈 수 없는 뒷산엔
인동꽃 기어이 노랗고
산 넘어 강남제비 나래 펴고 돌아오네
꽃피는 사월 봄날
생명은 모두
겨울을 훌훌 털고 일어서지만
목숨을 움켜쥐고 엎드린 우리 모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부끄러운 날
출향일기(出鄕日記) ․ 4
-무연고 가묘 앞에서
무심코 그대 앞을
스쳐 지난 그해 겨울
애걸하는 눈빛이 차곡차곡
두 눈을 접을 때
그대보다 더 낮게 엎드린 슬픔이
사랑인 줄 알면서
손 내미는 영혼을 뿌리친
그 해 겨울
사랑의 날개가 파닥파닥
언 뺨을 때리며 날아간
그 해 겨울
아, 떠도는 날, 산마루에서
그대를 버린 지는 이미 오래
사랑을 버린 지는 이미 오래
귀향 ․ 1
-*중문지서 가는 길
섬 길은 길이 아니었네
떠밀리는 비명
오랏줄에 묶인 이념의 편린들
고향집 돌아보는 젖은 눈빛이
토담 밭 지나가라 앉으면
무더기 무더기 떠오르는 갈까마귀 떼
어느 법전에도 없는 형장에서
젖 달라는 딸애와
몰아치는 폭력은 두렵기만 하고
올려다보면 산 너머
남은 눈물 메말리는 군용기
사랑을 팽개치고
목숨을 구걸한 길
※서귀포시 저문동과 이웃해 있다.
어머니가 끌려간 곳
귀향 ․ 2
-전향서
그 해 늦가을 새벽
스물두 살의 사랑은
전향서와 이혼각서를 유서처럼 남겨놓고
제 곁을 떠났습니다
섬길 거닐다보면 문득
산 너머 뭉게뭉게 피어올라
아스라이 멀어지는 사랑
떳떳한 죽음이 남기는
사리알 같은 사랑을 왜 몰랐을까요
슬픔에 대하여 ․ 1
-*재 회
밤길 멀리
세상 몰래 돌아서는 당신
오는 봄날에는 파랗게 살아오시나요
군화발소리 터벅터벅
불륜의 문턱에 기대앉은
내 영혼을 어쩌라고
떠나가는 당신
막다른 골목에서 이제 나는
순결한 속옷을 벗어던지고
타인의 몫으로 돌아누워야 하나요
스물두해의 사랑을 어쩌려고
달빛 가득
산이 된 당신
※1950년 12월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토벌군인과 위장 개
가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겨두고 떠났다.
슬픔에 대하여 ․ 2
-재 혼
첫사랑의 추억은 산 속에 묻어둬야 하네
언제까지 온전할 수 있다면
갓 길로 갓 길로 떠다니며 이고 온 사랑까지
산 넘어 산 속에 묻어 둬야하네
윤락과 매춘의 몇 해
자궁 속에 뿌리친 무수한 문신과
툭툭 불륜의 불감증을 걷어차는
발길질은 참을 수 없는 시련이고
엄연한 흔적을 지울 길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가고 없는 세월을 탓해야 하나
엄연한 불륜을 돌이킬 수 없다면
어디까지나 생존의 조건이었다고
목소리라도 드높 혀야 하나
제 2 부
1956년 8년의 피신 끝에 중문지서
에 자수한 아버지는 제주, 서귀, 성산
포를 돌며 반공강연을 했다. 토벌군인
과 사이에 의붓형을 낳은 어머니와 재
결합을 한 것은 그 이듬해 일이었다.
재산을 뺏긴 채 고향 저문동에서 쫓
겨난 아버지는 재건마을인 서귀포시 천
서동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의붓형은
양자를 들고 소아마비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하산 ․ 1
산간에 눈발 흩날리고
삐라 뚝뚝 떨어진다
날아오는 종달새야
내 죄명은 무엇이더냐
전향하면 살려준다는 최후통첩이
살아서 부끄러운 목숨을 적신다
숨어 지낸 8년의 고독은
부질없는 저항이었을까
삶의 미련이 나를 불러
가다듬은 하산 길
발길 붙든 색동댕기 한 자락이
가는 길을 묻는다
누가 평온한 들녘에
죽음을 불러들였느냐
주인 없는 묘지들이
가는 길을 물어온다
하산 ․ 2
-취조실에서
목 매달린 돼지처럼 차라리
울부짖기나 해볼 걸
저승의 문턱에 조용히 기대어
써 내린 전향서 한 장
더벅머리와 갈퀴 같은 손톱
능선에 엎드린 8년의 고독을
하소연할 길이 없네
미련이 남을 때 죽음은
꽃처럼 고운 일이지만
살아서 더럽힌 산의 영혼
하산 ․ 3
-삭 발
무성하게 자란 푸르른 영혼이
찬 서리를 만나 우수수 우수수
이파리를 떨어뜨린 그날 이후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른 적 없었네
누구도 손 내밀지 않았네
하산 ․ 4
-이 송
호송차가 중문지서를 떠나 경찰서로 향한 그해
겨울, 안길 것 같은 저문동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안개 속의 낙도처럼 어렴풋 떠오른 스무 여덟 해
자화상도 내게서 멀어졌다
무심코 바라 본 낯선 세상
상처 입은 길가의 여인들은 통곡의 장대비를 쏟고
통금령이 야비하게 그들을 걷어찼다 이 시대의
폭력은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철창속의 분노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주먹을 모아 쥔 몇몇 반항은
워커 발에 맞섰고 끝내 무릎을 꿇었다
철창속의 나는 야경을 무심코 바라보며 주먹밥을
구걸했을 뿐 어떤 슬픔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아내는 소망대로 살아 있다했고 타인의 아들을
낳았다고 했지만 분노하지 않았다
이미 깊숙이 잠복해 들어온 이 시대의 병
불감증과 무기력증
호송차가 멀어지며 내가 내게서 멀어졌다
반공강연 ․ 1
-관덕정에서
길은 보이지 않았다
타향길이거나 아니면
아버지 나를 연명시킨 산길이거나 간에
길이 있다면 형틀을 이어매고도 갈 수가 있는데
하루를 살거나 그만 끝장내거나
길이 있다면
가는 길을 구걸하고도 싶은데
길은 보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적개심으로
찾아 떠도는 길
배신을 하거나 내가 당하거나
길이 있다면
가는 길을 강탈하고도 싶은데
길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책가방들이
안개무리로 뿌리 채 일어서
보일 듯 말 듯 떠오른 길은
이내 땅속으로 가라앉고
핏대를 세우고 불러도, 나발을 불고 부르짖어도
거짓은 언제나 거짓인 것처럼
써 준 대본을 읽을 때
눈물로 피눈물로 외칠 때도
거짓은 언제나 거짓인 것처럼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고
반공강연 ․ 2
-성산포에서
손수건 한 장 건네주고
돌아서는 눈물
여인처럼 나 또한 서럽다고
말할 수 없네
속으로 속으로 가다듬은
축축한 눈빛을 향해
가슴 속의 노래는 억새의 새순처럼
곱고 싱싱하다고 말할 수 없네
이 비극은 모조리
우리들 때문이었다고
가고 없는 벗들을 원망해야 하나
오열을 가다듬은 성산포에서
모든 절망은 우리들 자신 때문이었다고
장문의 대본을 읽어내려야 하나
저 여인은 누구일까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왔다가
눈물로 돌아서는 저 상복
아내를 닮은 여인
귀향길
-아버지
아버지, 물려주신 이름을 버리고 돌아갑니다
의미를 아실 리 없는 사상범
적당히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쩔 수 없어 탁류 같은 시류를 따라 흐릅니다
당신은 이미 세파에 밀려
세상에 안 계시고
날 저문 이승에 내리는 눈이
길이 아니라고 가는 길을 지웁니다
저 대신 사약을 받으신
그리운 아버지
쓸쓸한 귀향길에 삐라처럼 눈이 쌓입니다
기다림은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데
길이 아닌 길을
길이라고 갑니다
만남 ․ 1
돌아앉은 아내는 물마루에 생각을 담그고 있었다
타락한 시대, 만남의 조건은 얼마나 참신해야 적당 한가 타락한 여자의 일생은 시대의 산물이므로 지난 일일랑 먼지를 털 듯 훌훌 털었으면 하련만 아내는 낚아 올린 눈물을 훔칠 뿐 이었다
아들은 젖가슴을 더듬으며 징징징 새벽잠을 거둬내고 어린 딸이 파닥파닥 간질병을 앓고 있는 마루턱을 지나 먼동이 밝아왔다
이윽고 언덕벼랑의 송림을 끌고 오는 햇살을 맞이하면 아, 풍상에 삭은 부모님의 뼛가루가 허망한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고 누이는 한 항아리의 눈물을 쏟고 돌아갔다
쌀독을 긁어대는 가난과 그 해에 태워 없앴다는 족보와 밭문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을 맞춰서면 눌러앉은 가난도 자리를 뜨련만 아내와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담벼락 너머 기웃대는 벗들이 삿대질을 꽂고 돌아가면 우리는 몇 대야의 오물로 남았다
아, 타락한 시대, 귀향의 조건은 얼마나 깨끗해야 당당한 것인가 가슴을 치는 가운데 아이들은 쌀독 긁는 소리에 맞춰 징징징 쇳소리를 냈다
만남 ․ 2
만남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어떤 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
꽃다운 꽃인 것처럼 우리의 사랑은
멀리서 바라볼 때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만남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멀리서 바라보아야 우리의 사랑은
꽃처럼 아름답고
꽃처럼 아름다워야 사랑은 오래 남습니다
만남 ․ 3
-의붓아들
어서 오렴 내키지 않을지라도
두 눈 꼭 감고 오기만 하렴
배불리 먹을 식량과
따스한 사랑방은 없다만
언제 우리 밥으로만 살았더냐
꽃샘추위 무시로 몰려오는 봄날은 왠지 서러워
저녁노을 밀물지면 괜스레 울적하기만 하고
우리 언제 온돌로만 살았더냐
너와 내가 뿌리 친 이 땅은
무시로 무시로 폭설을 받아들이고
폭우를 받아들이며
떠내려가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우리 언제 남남으로만 살았더냐
수시로 뜯고 헐뜯고
영영 등을 돌릴 것 같다가도 가슴을 맞대며
이래저래 다스려온 이 땅은
왠지 증오스럽다가도 사랑스럽고
우리 언제 밥으로만 살았더냐
수시로 수시로 쏟아지는 눈물을 마시며
피눈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연명한 우리
사랑을 알고 나면 만남은 수월한 것 이란다
사랑하나 믿고
내게로 오렴
만남 ․ 4
-족 보
족보 뿐 이었다 재물이란
머물다 흘러가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며
아버지는 족보 하나 내게 물리셨다
일본에서 흘러온 어머니의 비천한 시신이
겨울 땅한쪽을 차지하고 누울 때 아버지는
이름 석자를 족보 귀퉁이에 적으셨다 내 앞에
나타난 한 여인이 어머니가 된 그 해에도
아버지는 족보를 꺼내 놓으셨다
재물은 언젠가 구름처럼 머물다 떠나고
인생 또한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지만
족보는 세월과 함께 영원하다며
아버지는 종종 긴 숨을 가다듬었다
그 해에 불태워 없앤 족보여
부모의 이름 석자마저 써 넣을 곳 없는
어처구니없는 날
가슴속에 이름 석자를 적어 넣었다
불태워 없앤다고 물려받은 혈통까지
사라지느냐
가슴에 새긴 이름은 핏속에 뿌리쳐
때때로 주먹을 모아 쥐곤 했다
-저문동을 떠나며
기다림이 부둣가에 턱을 괴고 앉아있네
돌아 오마는 약속을 곱씹으며
묶은 닻줄을 다시 풀고 있네
마을은 하나 둘 살림을 챙겨
파도처럼 흩어졌지만 기다림은
예전처럼 등대에 불을 켜고 있네
우리는 알고 있네
오랫동안 기다림은
닻줄을 묶고 다시 풀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네
한 꾸러미의 절망을 챙겨 우리는 떠나왔지만
기다림이 물거품 같은 것인 줄 알면서
-*들 길
세상 가는 길을 포기했을 때
살 길이 보였다
절뚝절뚝 앞서가는 어린 딸과
아들을 끌어안은 말없는 아내와
무기력을 타이르는 낡은 살림이
들판을 헤쳤다
한 페이지의 시대사가
역사의 변두리로 흐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1961년 저문동을 떠나 서귀포시 천서동으로 이주했다.
우연찮게도 아버지가 8년 동안 지낸 바로 그곳이었다.
사랑에 대하여 ․ 1
사랑을 바다와 같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새우잠을 자고 나면 밤새 내린 산간의 빗줄기가
흘러들어 출렁이는 바다, 제 아무리 곱씹어도
곰 삭일 수 없는 찌꺼기까지 바다에선 자유로웠다
숨어 지낸 8 년 동안, 싱싱한 이슬로만 출렁일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손에 꼭 한번 넣어 보고
싶은 사랑은 자꾸만 깊어져 바다 같은 사랑을
하리라고 마음을 고쳐 잡곤 했다
불륜의 과거는 씹어도 씹어도 곰삭지 않아 아내를
절망의 땅 끝까지 떠밀어낸 새벽이면 파랗게
출렁이는 바다보기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종종 타
이르는 바다의 출렁거림이 언 뺨을 후려치면 손에
꼭 한번 넣어보고 싶은 아내의 사랑이 먼저 나를
품에 넣었다
사랑에 대하여 ․ 2
먼 산 바라보는 당신
능선에 엎드린 과거는 언제 봐도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인가요
공사판의 하루와
죽은 척 지낸 또 하나의 하루가
주저앉은 어깨 너머 떠오릅니다
살아갈수록 당신은
쓸쓸한 낙도로 흔들립니다
의붓아들을 둔
불쌍한 당신
간밤에는
눅눅한 체취와 야윈 뼈마디가 역겨워
등을 돌렸습니다
먼 산에 그리움을 드리우고
일터로 몸 낮추는 당신
언제나 홀로인 당신
사랑에 대하여 ․ 3
-벌 목
산길을 오릅니다
고개를 넘길 때마다 당신의 체취가
능선 멀리 그리움으로 일어섭니다
길을 버리며 푸르디푸른
상수리, 왜가리, 느릅나무....
싱싱한 밑 둥에 톱날을 갖다 댑니다
나무는 산속에 뿌리쳐야 더욱 푸르고
사람은 세상에 뿌리쳐야 더욱 아름다운 것인 줄 알면서
산 밖으로 나무를 밀어 냅니다
나무가 사라지는 산은 이미 산이 아니고
사람이 쫓기는 세상은 이미
세상이 아닌 줄 알면서
사랑에 대하여 ․ 4
-메밀밭을 바라보며
산간벽촌 돌밭에 보잘 것 없는 미물이
그 사이 뿌리를 치고 싹을 펴 올렸네요
못난 운명을 한탄하며
어느 날은 힘에 부쳐 주저앉기도 하면서
아등바등 대던 미물이 어느새
자리를 잡았네요
티끌만도 못한 그것이
뿌리를 치고 싹을 펴 올리기까지
누구나 우러르는 자수성가를 하기까지 그것은
사시사철 절망에 밀리다가
절망을 씹어 삼켰다 지요
강한 빛이 어둠을 삼키듯
티끌만한 그것이 글쎄 돌멩이를 삼켰다 지요
사랑에 대하여 ․ 5
그 해 겨울 집달관이 들이닥치고
우리는 급류 속의 뗏목처럼 휘말렸다
쥔 것은 한 웅 큼의 눈물과 그릇 서너 개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는 살려고 바동댔고
떠난 후엔 사는 것이 지겨워 바동댔다
하나 둘 낚아 올린 추억을 안주삼아
술병을 기울이다보면
마을은 이중삼중 자물쇠를 채우고
떠나라는 아우성만 솔잎에 무성했다
이미 나는 무기력한 아비였다
등짝에 달라붙어 체온을 뜯어내는
철없는 아이들은
내 어릴 적을 얼마나 닮았던지
밤바다를 바라보면 밀물에 말려오는
유년기의 고독
내일을 구실로 날은 밝아 오는데
모습을 드러내면 달려드는 아가미 떼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됐을 때도
길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별에 대하여 ․ 1
아들을 되돌려 보내겠습니다
원치 않은 만남이었으므로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겠습니다
구름 한두 점 걸린 가을 하늘 올려다보면
당신과 첫 만남은 엊그제 같고
훌쩍 세월을 건너뛸 수 있다면 뛰어내려
단둘이 해변을 거닐고 싶습니다
아들은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온 길을 알 수 없으므로
떠날 곳을 알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이별이 모두 아픈 가슴은 아닙니다
어떤 이별은 또 아름다운 만남일 수 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후 우리는
물마루 멀리
아름다운 내일에 대하여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별에 대하여 ․ 2
-꽃상여
절뚝절뚝 들판을 지나 언덕을 넘어 서네
손수건 한 장 유서처럼 포개놓고
두 어깨에 한 세상을 접고 가네
편히 누울 곳 없는 이승
누울 곳 있다기에 떠나가는
소아마비 내 딸
부디 잘 가 거라
오르고 나면 또 비탈길
접고 나면 또 서러움
절뚝절뚝 걸어서 잘도 왔네
가지런히 걸을 수 있는 곳
한자리씩 누울 몫이 주어진 그 곳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목숨 한 잎 떨어낸 후
그대들은 쉽게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내게서 떠난 혈육들은
가슴 속에 원한을 물고 되살아오네
이별에 대하여 ․ 3
-천서동을 떠나며
몸부림쳐 봐야 밑바닥일 뿐인
강물 속 같은 시대
맥 풀려 돌아오는 저물녘이면
빈 쌀독 긁는 소리
동구 밖엔 빚 문서가 버티고 있었다
뿌리 채 흔들리는 가난과
멀미에 겨워 떠난 식구들
밤이면 이불 속에 움츠려
떠오르는 햇살을 두려워했다
내려다보면 지은 죄만큼씩 서 있는
크고 작은 집들
이 시대의 빈부는 지은 죄와 비례해도 좋은가
죄의 심연으로 낡은 살림을 운반할 때
누가 부르는 소리
돌아보면 산 너머 그리움이 떼 지어
몰려왔다
※1971년 부모님은 천서동을 떠났다. 소아마비 누나를 잃고 의붓형을 떠나보낸 우리는 2남 2녀였다.
제 3 부
천서동을 떠나 해변으로 이주한 아
버지는 서귀포시 예래동, 중문동, 용
흥동을 유랑 하시다시피 했다..........
종종 기관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농약
살포기에 다쳐 불구의 몸이 되었다.
떠도는 자의 노래 ․ 1
-감귤원
날마다 누가 부른다
창살 부서진 단칸방일망정 오늘은
한 자리에 머물고 싶은데
정류소의 낡은 방아 틀처럼
돌아가는 세태를 따라 돌고도 싶은데
누가 나를 부른다
두 손을 꼭 모아쥐라고
잠든 마음을 뒤 흔든다
언덕하나 넘을 기력이 없네
부르면 부를수록 왠지
서러운 노래
따라 부를 기력마저 없네
시키면 시킨 대로 살아가는
감귤원
떠도는 자의 노래 ․ 2
-연좌제
아들은 무사할까
행선지는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고
온전한 구석이 없을 때까지
망가진 것이 내 생애인데
마을로 간 아들은 무사할까
바라보면 주체할 수 없어 토해내던
악몽의 취조실과
어딘가 있을 법도한데
어디에도 출구는 없어
양은대야 구겨 지 듯 무너져 울부짖던
오일장 선술집
표류선처럼 뒤엉켜오는
찢긴 옷가지와 터진 입술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자화상이여
네가 가는 길은 손 한 번 써볼 틈 없이
이념의 안개무리에 뒤 덮혀
가도 가도 상처 뿐 일 것이네
떠도는 자의 노래 ․ 3
-귤을 따며
껍질을 벗기면 속에 내가 움츠려 있다
가슴 한번 활짝 펴보지 못한 채
알알이 맺힌 껍질을 벗기면
그 속에 내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위를 갖다댈 때마다 파르르 파르르
떠는 귤을 보면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며 맺힌
비겁함이 움츠려 있다
그날의 누명에 대하여 말 한마디 못하고
알알이 맺힌 응어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매몰차게 구르는 귤을 보면
살아온 날은 얼마나 치욕이던지
우리가 우리를 버린 지는 이미 오래
한마디 말 못하고 실려 가는 귤을 보면
우리가 우리를 잊은 지도 이미 오래
떠도는 자의 노래 ․ 4
-토벌대의 아들
무작정 나선 길 이었습니다
교복을 입을 나이 열여덟
작업복인 내게 어머니는
소중한 그리움 이었습니다
추억의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손짓하던 어머니
나를 기른 것은 등을 떠밀고 간
야비함이 아니라
능선마루에 온종일 주저앉은 눈물 이었습니다
말없이 돌아서는 어머니
나를 낳은 것은 당신이 아니라
시대의 패륜이었다는
우리 어머니
능선마루에 주저앉은 눈물은
오랫동안 긴긴 밤을 불 밝힐 것입니다
떠도는 자의 노래 ․ 5
찍힌 사상범의 아내는 알지
찍혔다는 것은
사망선고에 도장이 찍히는 것보다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메스가 오장육부를 도려낼 때마다
아찔하다는 것을
찍힌 사상범의 아내는 알지
말도 적당히 골라가며 해야 돼
이 눈치 저 눈치 보아가며
고개도 적당히 숙여줘야 돼
간첩선이 나타났다거나
대학생이 거리에 나섰다거나
노동자가 부르튼 손을 모아 쥘 때
끌려간 남편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얼음장처럼 굳은 몸 위에
당신이 피눈물로 질 때
누구를 저주 했는가
빨아도 헹구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찍힌 사상범의 아내만이 알지
떠도는 자의 노래 ․ 6
-토벌대의 아들을 생각함
외로운 날
가슴과 가슴끼리 만남은 반가운 일이지
세상이 나를 버린 지는 이미 오래
산 넘어 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
패륜의 유산이거나
토벌대의 종자이든지 간에
멀리서 온 인연을 맞이하는 일은
눈물겨운 일이지
낙엽 같은 손 꼭 잡고
사랑이 마를 만큼 운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
안부도 묻기 전에
떠나라는 아내야
눈물을 흩날리며
돌아서는 아들아
쓸쓸한 날에 외로움끼리
헤어짐은
헤어져 본 사람만이 알지
떠도는 자의 노래 ․ 7
-섬바람
차라리 네 품에 안기고 팠다
발톱의 때라도 되라면 되고 팠다
중문리에서
모습을 드러내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고
취조 받던 그날의 중문지서는
언제나 악몽 속에 옭아 묶었다
떠밀지 않아도 떠나가리라
시키면 시킨 대로 살아온 감귤원
안길 듯 안길 듯 바람은 앞서가고
안기고 싶어* 용흥리를 향했다
뜯긴 아내의 등허리와
벼룩 떼처럼 등짝에 달라붙은 아이들이
떠나가는 까닭을 물어올 때
닭똥 같은 절망을 쏟을 때
차라리 발톱의 때라도 되고 팠다
*서귀포시에 있는 마을
떠도는 자의 노래 ․ 8
-농약을 치면서
누구를 먹여 살리느냐 수양버들처럼
흰 뼈는 땅 끝까지 굽었고
굴종하다보면 아버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눈물이 솟구친다 하셨던지
그리하여 내 이십대는 두 주먹을 모아 쥐었습니다
아버지, 그날의 노래는 혁명가가 아니었으며
그날의 발버둥은 쿠데타가 아니었으며
지금 나는 어이없이
귤나무의 병균을 겨누고 있습니다
흰 뼈를 언제 펴보겠냐고
치미는 부화는 폐결핵으로 들끓고
땅 끝까지 굽히다보면 아버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눈물만 솟구치는지
내 오십대는 귤나무의 병균이나 겨누고 있습니다
떠도는 자의 노래 ․ 9
-상 처
폐물 같은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산간벽촌
감귤원 산골짝에 나뒹구는 목숨이
뭘 그리 대단하다고
농약살포기는 루프를 휘두르며 으르렁대고
다리하나 가졌으면 됐지, 무엇을 더 가지려고
농약살포기가 숨고를 틈 없이 으르렁댈 때
두 손을 싹싹 비볐다
농약살포기가 취조실의 그날처럼 으르렁댈 때
포기 할 만큼 지루하기도 했겠지만
목덜미를 조이며 으르렁댈 때
저승의 문턱에 기대어 쓴
또 한 장의 전향서
배상청구 포기각서
떠도는 자의 노래 ․ 10
-병원에서
병실 멀리
아득한 물마루
밀물이
세월을 뒤척이며 온다
밀물이
다독인 상처를 일깨워
상처가
몸을 집어 삼킨다
마취약이 전신을 마비시킬 때
비로소 내가 상처를 집어 삼킨다
마음 하나로는 버티기 힘든
이 상처
인술로도 도리 없는
가슴 속의 상처
떠도는 자의 노래 ․ 11
-결혼식
딸을 남기고 돌아 섰습니다
갈수록 가는 길은 가팔라서
짐 하나를 덜었다는 푸념과
똘똘 뭉친 아내의 미련을
고스란히 남기고 떠나 왔습니다
가진 것 없는 딸이 애처롭습니다
물려받은 가난을 이어매고
아스라이 서 있는 비탈길의 딸이
노을 멀리 자화상처럼 떠오릅니다
떠도는 자의 노래 ․ 12
-목발을 짚고서서
한쪽 다리와 만성폐결핵
목발 짚고 먼 산 올려보네
그대들과 섞이기에는
너무 깊은 병
낡은 그리움에 기대어
가을 산 바라보네
어디로 가야할까
길은 절망에 가려 보이지 않고
절뚝절뚝
행선지 물어 보네
앞서가는 그대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교신을 하고
먼 산까지 어둠에 갇히네
어디로 가야할까
떠도는 자의 노래 ․ 13
-아내에게
왜 그랬는지 몰라
바다와 등 맞대 살면서 바다를 외면하듯
아내와 살 맞대 살면서
왜 그랬는지 몰라
내 사랑 그렇게 어설펐는지 몰라
한번 멀어진 사랑은 다가올 줄 모르고
다가서면 물러서는 것을,
왜 그랬는지 몰라
한 평생 살 맞대 살며
외면한 사랑
왜 그랬는지 몰라
떠도는 자의 노래 ․ 14
-섬 길
길이 있으므로 길을 간다
없는 길은 닦으며 간다
살아 있으므로 길을 간다
머뭇거리는 그대여
가는 길을 버리지 마라
짐승도 길 따라 흘러
목숨을 버릴 때 있다
길은 때때로 독침처럼 흘러
삶을 부수고
길은 때때로 물처럼 흘러
삶을 일으킨다
살아 있으므로 길을 간다
죽지 못해 가는 길도 길이다
죽으려고 가는 길도 길이다
제 4 부
황혼기를 맞으면서 유방암을 앓기 시작한 어머니는 원인을 토벌군인과
의 관계에 두면서 괴로워했다. 아버지 역시 술을 가까이 하면서 만성 폐
결핵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30대의 젊음을 지키지 못하고 의붓 형이 세상을 떠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삶이 그리운 날 ․ 1
-1992년
길에 대하여
더 나은 행선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감시망과
이념의 올가미
엊그제는 누구와 만났으며
어제는 또 누구와 헤어졌는지
돌아볼 겨를 없었다
지명수배 전단이 싸락눈처럼 쏟아지고
뒷골목을 배회하는 아들과
거리마다 출렁이는 정보망은 언제나 두렵고
품삯을 떼이고 오는 아내의 처진 어깨가
절망보다 깊은 어둠 속에 주저앉을 때
우리는 대선에서 또 패했다
민주는 패했고, 독재는 승리했다.
아들은 또 잘렸다했고
내 슬픔은 더 커졌다
길에 대하여
더 나은 살 길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랑에 대하여
말할 수 없었다
삶이 그리운 날 ․ 2
-세기말
완만한 곡선에 앉아 있을 때
혹은 앉은자리가 원만하다고 느꼈을 때
그리움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고민을 하는 가운데
망치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망치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을 때
직선 위에 앉아 있었다
혹은 곧추세운 기둥 위 자리가
아찔하다고 느꼈을 때
그리움이 누군가를 떠밀었다
직선과 직선이 서로 만나
파열음을 일으킬 때
끝내 추락할 때
틈바구니 사이에서 우리는
한낱 사물에 불과했다
삶이 그리운 날 ․ 3
-세상의 끝에서
하늬바람 서걱 이는 들녘여기
누가 나를 정중히 눕혀놓았네
불륜이 낳은 패륜아
한줄기 바람으로 떠돌다
한점 눈물로 지는 내게도
누울 몫이 있었네
*한림읍 거문오름
온종일 주저앉은 어머니의 눈물이
횃불처럼 떠오르는 능선마루
누가 나를 정중히 눈감기고
이고 온 짐을 부려놓았네
이제 그만 떠나다오
나를 낳아 얻은 죄
형벌로 뭉친 애환일랑
한 삽 한 삽 퍼놓고 부디 돌아서다오
섬길 지나고 뱃길 지나면
물마루에 나부끼는 푸른 수건 한 장
나를 낳아 얻은 슬픔 부디 훔쳐내 다오
※제주도 동쪽 산간마을, 형은 이곳으로 양자를 갔고, 그곳에서
30대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삶이 그리운 날 ․ 4
-유방암
이대로 눈감고 살아가란 말이냐
윤락과 간음이 대수롭지 않은 시대
이 정도는 괜찮다고 적당히 위로하며 지내란 말이냐
반항다운 반항 한번
사랑다운 사랑 한번 해보지 못한 채
꺾인 순결은 돌이킬 수 없는 수치였고
문드러진 하치장의 오물처럼 몸은 이래도
몸속에 흐르는 피만큼은 여전히 곱고
싱싱하다고 변명이라도 하란 말이냐
이대로 적당히 살다 주저앉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 또한 할 말이 있다고
그대들 또한 죽으라면 죽어지냈던 것처럼
패륜은 목숨과 맞바꾼 생존의 담보였다고
핏대라도 세우란 말이냐
살을 도려낸다고
핏속에 흐르는 세월까지 도려낼 수 있단 말이냐
※어머니는 92년 유방암을 앓다가 94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