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변에 예쁜 돌이 많다. 모나지 않고 둥근 ‘몽돌’이다. 예전에는 강이었던 것 같다. 산책길에 이 돌들을 주워 모으고 있다. 깨진 돌은 그냥 지나치고 제 모습을 유지한 몽돌들을 주로 줍는다.
돌은 비슷하게 생겼어도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모아놓으면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돌이 다음에는 눈에 띄어 선택되기도 한다. 나름대로 유심히 살폈다고 생각해도 다음에 지나가다보면 또 예쁜 몽돌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살면서 잠시도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는 경우가 없다. 늘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하기도하고 선택당하기도 한다. 선택을 못 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선택을 못해 ‘결정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선택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선택받지 못한 것에 울분을 삭히기도 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곤혹스럽다. 예쁜 돌을 줍는 정도가 아니고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라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라는 얘기도 결국은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업을 실패했다면 내가 세운 계획 즉, 여러 가지 선택을 잘못 한 것일 테고 고객들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것이다. 시험에 낙방하고 면접에 떨어진 경우도 그렇다.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게으른 것도 원인 일 수 있으나 대부분은 선택의 문제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항상 최선일까? 합리적인 선택이란 “비용을 최소화하고 편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을 말한다고 배웠다. 선택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비용은 기회비용이고, 선택으로 인하여 얻는 편익은 만족감이다. 결국 합리적 선택이란 욕망이나 충동, 직관에 의지하여 판단하지 않고 엄밀한 논리적 규칙과 절차에 따라 결정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합리적인 선택만하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자주 묻는다. 이 선택은 과연 최선이었는지.
실제 우리가 살면서 선택에 직면하는 순간들은 주로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상황이 많다. 충분히 예상한 상황에서는 선택이라기보다는 결정이다. 종종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내리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큰 좌절을 겪거나 후회를 하게 된다. 억울하고 분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법조계에는 "최선의 판결보다도 최악의 조정이 더 낫다"라는 말이 회자한다. 조정은 절반의 패배로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한편으론 절반의 승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하찮은 돌멩이를 주우면서도 고민하는 선택의 삶, 그래서 살아가는 맛이 있는 것일까. <고상환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