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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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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책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 먼 당신인 것 같다. 특별한 모임이나 장소 외 혹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를 빼곤 ‘종이책’에 대한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독서 모임 혹은 원작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어 세간의 주목을 끌 때만 비로소 그 책이 고개를 내밀 정도이다. 강의나 강연 같은 데서도 책으로 사례를 드는 경우는 별로 없고 애써 ‘훌륭한 책’이라고 소개를 해봤자 시큰둥하거나 전달이 잘 안 된다. 그래서 강사는 이내 TV 드라마나 트롯 프로그램으로 갈아타고 잘 알려진 인물의 말을 흉내 내거나 유행하는 용어를 들이대면 그제서야 반짝 반응이 오니, 누가 책 이야기를 하겠는가. 책 소개만 해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읽기를 권하는 일은 정말 ‘몹쓸’ 짓 같은 느낌이다.
확실히 책과 사회의 흐름은 서로의 길이 한참 어긋나 있는 것 같다. 굳이 읽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기껏 읽어봤자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도 그 ‘효용성’을 보상받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민 열 명 중 너덧 명이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으니 오히려 책 읽는 사람이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을 지경이다. 정말 이렇게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걸까. 사람의 생각하는 힘과 책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자라는 세대들이 우리를 닮아 책 읽기를 안 해도 좋은 걸까.
자라는 아이들은 유년기에 심심함을 경험한다. 자연적인 심심함은 무언가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요소이니 그냥 두면 해결이 된다. 그런데 디지털 자극이 없을 때, 이미 디지털에 유사 중독이 된 아이들은 잠시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못 견뎌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아이들이 디지털 읽기를 좋아한다고 답하지만, 자신이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인쇄물의 효과가 훨씬 낫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시각과 청각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디지털 읽기는 그야말로 한 번 ‘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 디지털 읽기에 빠진 아이들은 핵심적인 글자에 반응하기 보다는 여백이나 그냥 눈이 가는 글자에 반응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생각하며 읽기와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읽기’는 곧 ‘생각하기’란 점이다. 종이책의 글자를 통해 ‘생각하기’가 되어야 ‘이해하는’ 읽기가 되는데, 곧바로 디지털 읽기에 노출되다 보니 문장이나 단락 혹은 한 페이지 전체를 이미지화하여 순간적으로 지나치면서도 ‘읽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두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배우는 아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사용해야 될 때 부모가 그 구분만 명확하게 해준다면(주로 해외에 거주하는 가정. 집과 학교에서 쓰는 언어를 구별해서 사용) 아이들은 이런 과정에서 두 가지 언어를 충분히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중언어 사용자는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언어적 유연성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곧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넘나들게 하는 것이다. 종이책을 통해 생각하는 읽기가 훈련되었을 때 그 읽기 방식을 디지털 읽기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익힌다면 두 가지 매체의 특징들도 자연히 터득하게 되어 훨씬 읽기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주의할 것은 디지털 읽기가 시작되면 반드시 ‘반대 읽기’ 즉 종이책 읽기도 함께 해야 하며, 읽기는 속도가 아닌 의미, 생각이 중요함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네 번째 개학 연기를 검토하면서 교육계의 우려와 혼란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선 여전히 개학 연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세 차례 개학 연기를 경험한 교사와 학부모들은 당국의 ‘기준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그리고 온라인 개학을 하더라도 모두에게 상당한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혼란이 계속되는 이 시기에 온라인 수업은 학교에 따르되, 부모들의 시선은 극히 기본적인 곳에 가 있어야 한다. 즉 ‘읽기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도록 아이들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 깊이 읽기의 경험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어차피 우리 사회는 디지털에 빠진 아이들에게 이 두 가지 경험을 모두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갈피를 잡기 힘든 이때, 아이들로 하여금 시간을 들이면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계속 불어 넣어주어야 한다. 특히 미증유의 사태에 불안을 느끼는 아이들은 이런 기대감 속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초를 확립할 수가 있다. 읽은 것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뭔가를 기대하는 법을 배운다.
읽기를 배우는 동안 생각하는 것을 도와줄 또 다른 방법은 손으로 글씨를 쓰게 하는 것이다. 글씨를 쓰는 중에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탐색할 수 있다. 나이의 다소를 떠나 천천히 시간을 들여 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함께 한 적은 언제였던가. 지금이 바로 그런 기회이다. ‘나를 찾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저자소개>
선주문학회원, 생활공감정책 참여단, 지방 자치분권 지지 활동. 청소년 진로체험 자원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