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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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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대단한 열풍이었다. 적어도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는. 방송-지상파와 종편 TV, 라디오, 세바시, 유튜브-이나 SNS, 학교, 회사 그리고 병영 할 것 없이 단체마다 ‘인문학’을 소개하는 강사들로 넘쳐나고 도서목록도 줄을 이었다. 드디어는 각종 채용의 문턱에까지 다가와 ‘인문학 필독 사회’로 안착이 되는가 싶더니, 코로나19를 만나 지금은 숨을 고르는 중인 것 같다.
인문학이란 인간 자체에 대한, 인간에게로 향하는 학문으로써 인간 외적 즉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과학과 구분되는 영역이라 하겠다. 고전이나 역사, 언어와 철학, 예술, 종교를 망라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다가 인간과 인간 사이 곧 사회현상을 다루는 분야-경제・정치・문화・심리・지리-까지 ‘소통’이나 ‘가치관’을 주제로 한다는 명분으로 인문학 영역에 넘나들다 보니, 사람이 우선시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문 모두를 수용해 버렸다. 어쨌든 바람직한 삶의 방향, 개인과 사회의 변화, 앎에 대한 탐구를 인문학으로 묶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독서를 권하고, 많은 이들이 앞장서 친절한 강의를 이어가는 ‘인문학 한국’의 모습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동안 옆도 안 보고 참 부지런히들 살아왔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반면 인간성은 밀려나고, 더구나 취업 시장이 지대한 관심거리로 등장하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물질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히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그 부작용이 갈수록 심해지자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하면서 동시에 일상의 모습도 돌아보기 시작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한가,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일을 왜 하는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는 나쁜 사람인가,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할까 등에 대해서 답을 구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문학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의 고민을 탐색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많은 노력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 일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란 통과의례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쉽게 또 빨리 성취해 온 탓에 변화를 위한 고통의 과정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책들은 따분하기 짝이 없고, 그런 지겨운 책은 안 봐도 재미있는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변함없이 읽을만한 가치’를 지니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는 보물이지만, 살아온 속도에 비교하면 너무나 답답하고 갑갑해서 손에 잡을 엄두가 안 난다.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사태는 결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거대한 변전이다. 그리고 우리는 총선이란 「혼란의 시간」을 이제 막 지나온 참이다. 막막하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인간을 사랑하는’ 인문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그렇지만 이전처럼 그냥 목록을 뽑아 읽기를 권하고, 책의 내용에 조금 재미를 곁들여 들려주고, 서비스를 한 차원 높인 강의기법 중심으로 인문학을 전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상투적으로 읽고, 듣고 그냥 머릿속에만 머물면 인문학의 가치는 상자 속의 보물에 지나지 않는다. 반드시 변화를 가져와야 값어치가 있다. 어떤 책을 통째 읽고 많은 내용을 기억한다고 해서 일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일부분을 혹은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이해하더라도 나의 일상에 ‘변화’가 온다면 우리 시대의 인문학 열기의 진정한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읽은 것은 틈날 때마다 생각을 다듬어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옮겨본다.
<에피쿠로스의 행복: 성취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다.>
<아큐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정신승리를 추구한다.>
<에리히 프롬: 실제와 동떨어진 통찰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리처드 탈러의 매몰 비용 효과: 새 구두에 뒤꿈치가 까여도 벗지 않는다.>
<제이 그리피스, 현대국가의 법: 지구상의 생물들을 죽이거나 멸종시킬 수 있는 행동 또는 지구의 기후를 파괴하는 행위는 전혀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또 채플린이 그의 70번째 생일에 쓴 시도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계속 과거 속에 살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현재 나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이 순간, 생존할 뿐이다. 나는 요즘 매일같이 이렇게 살며 그것을 완전한 삶이라고 부른다.>
그러고보니 나 자신은 인문학에 입문은 했을지언정 인문학의 진정한 수혜자는 아닌 상 싶다. 욕망을 줄이면서 행복을 찾는 일에 영 서툴고, 세상을 직시하기보다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는 게 편하니까 말이다.
<저자소개>
마을활동가. 선주문학회・생활공감정책 참여단・지방 자치분권 지지 활동. 청소년 진로체험 자원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