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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다①]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과 그들의 행적

안정분 기자 / 입력 : 2020년 04월 22일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 2019)
ⓒ 경북문화신문
대한제국 말기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설가 이광수는 논설 ‘조선 사람인 청년들에게’(1910년 소년지 게재)에서 “내(余)가 일본에 있을 때 일본인들이 나를 조선인이라고 칭호하면 나는 모욕을 받는 것 같이 불쾌하고 한인(韓人)이라고 하면 우대를 받는 것같이 쾌족하더라”고 밝혔다. 즉 그에게 ‘대한제국’을 깎아내리려는 일제의 의도의 산물인 조선인(조센징)’이라는 칭호가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광수를 비롯한 조선 유학생들은 ‘조센징’이라는 멸시를 받으면서까지 왜 일본 제국대학을 선택했던 것일까.
이 책은 일본 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식민지 조선의 유학생들의 집단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부제 ‘대학제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는가’가 보여주듯이 저자는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을 찾고 있다.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저자 정종현은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을 중심으로 제국대학에 진학한 유학생들의 사례를 다루면서 누가 어떤 이유로 제국대학으로 향했고, 제국대학에서의 캠퍼스 생활, 네트워크, 졸업 후의 진로, 식민지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중심으로 책의 체계를 잡고 있다. 조선인 유학생집단의 면면을 불러내어 제국대학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식민지적 기원을 상기시키고 있다.

제국대학 유학생이 남긴 유산
일제강점기 일본 본토의 일곱 개 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식민지 조선의 유학생들은 1천여 명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즉 식민지기 1천여 명을 넘는 지식인들이 일본 내지의 제국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소위 엘리트 집단으로 현재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것들 중 상당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임시정부에서 연원해 제헌의회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역사적 산물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헌법은 해방 후 ‘유진오-행정연구위원회의 공동안’이 대한민국 헌법으로 채택된 것으로 제국대학 유학생의 영향을 입은 것이다. 이 공동안의 작성자 9명은 유진오를 제외하면 모두 식민지 시기 총독부의 행정과 사법 관료들이었다. 이들 중 3명은 도쿄와 교토 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이고 유진오를 포함 3명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출신이다.  
현재의 체육 엘리트 육성시스템인 태릉선수촌과 고교평준화 제도 역시 제국대학 출신 유학생인 민관식에 의해 만들어졌다. 민관식은 개성 출신으로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농학부 농림화학과를 졸업했다. 해방이후 국회의원,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1974년 일본의 정책을 한국 상황에 맞춰 고교평준화를 도입했다. 또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후 1966년 국가 대표를 입소시켜 집중 육성하는 태릉선수촌의 체육 엘리트 육성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외에도 이회창의 이모인 여성과학자이자 김삼순은 훗카이도 제국대학에 식물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일본에서 종균을 들여와 한국에 맞는 느타리버섯 인공재배법을 농가에 보급해 한국 버섯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는 그의 지대한 공에 의해 그동안 야생버섯만 먹던 것을 재배를 통해 먹을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저자가 보여주는 정재계 주요 인사,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로 대접받는 인물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이 제국대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 이들은 혈연, 학연 등으로 유기적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경성방직의 사장 김연수가 그랬고,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이 그렇다.
김연수는 고려대 설립자이자,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의 동생이다. 김연수의 큰아버지인 김기중과 아버지 김경중은 구한말 고창 지역의 유력 지주였다. 또 조선왕조의 대유학자 김인후의 후손이었다. 김연수는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식민지 조선의 사업가로서 고비 고비마다 교토제국대학 졸업생들과 맺은 인맥,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았다. 김연수가 맺은 일본의 미쓰비시사와 관계는 그의 손자 김윤 삼양홀딩스 대표에게 이어진다. 2012년 투자를 받아내 군산에 비스페놀 공장을 설립하는 등 해방 이후에도 제국대학의 네트워크는 여전히 계속됐다. 저자는 이 가문의 성공한 수많은 후손 중 김연수의 둘째 아들인 김상협을 특별히 언급했다. 김상엽은 야마구치고등학교를 거쳐 1942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가업 중 하나인 고려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구한말의 지주는 국무총리를 낳은 것이다. 김연수-김상협 부자를 통해 제국대학이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제도로 기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회창의 계보에도 제국대학이 확인된다. 이회창은 제국대학으로 유학 갔던 엘리트 집안이 어떻게 세습되어 이어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조부는 충남 예산의 지주였고, 백부는 교토제국대학 교수를 지냈던 이태규이다. 외삼촌 김성용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일본 군수성 관료를 역임했다. 이모인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 출신의 농학박사였으며, 이회창의 장인은 1942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해방 이후 대법원장 직무대행 및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다. 이처럼 이회창의 본가·외가·처가는 구한말 이래 지주 집안이면서 제국대학과 고등문관시험, 관료라는 제국의 사회적 신분 상승의 주요 장치를 공유하고 있다.

제국대학 역사적 이해 필요
이 책은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도,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제도들의 기원이 일본에 있음을 깨우쳐주고 있다. 제국대학은 총독부 식민 통치를 유지하는 관료의 수급처였으며 그곳의 유학생들은 관공사립 교육기관과 식민지 언론·출판 및 경제계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또 해방 이후에도 남북한 국가 건설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남북한 근대 학술의 기원이 됐다. 달리 말하면 제국대학은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육성장치였다. 

이광수는 장편소설 『흙』에서 드러나듯이 제국대학 조선학생들은 제국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송몽규, 박영출, 유형식처럼 제국에 저항한 유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학생 대부분은 일본 제국-식민지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저자는 이러한 부정적 요소 때문에 이들을 도덕적 이분법으로 모두 악이라 규정하고 적출하려는 것은 위험한 사고라고 경고한다. 제국대학이 근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은데 삭제하는 것은 근대의 형성에 작동한 가장 중요한 퍼즐을 없애는 격이라고.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라도 제국대학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역사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 도쿄제국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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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분 기자 / 입력 : 2020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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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정론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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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주변에서 볼수 있지만 관심을 주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후원해 주신 에스엠디에스피 대표님과 선행을 알려주시는 경북문화신문과 김예은 학생 기자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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