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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활동가・선주문학회원・생활공감정책 참여단・구미시 신활력 플러스사업 추진단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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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이름지어진 올 여름 장마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냈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은 생각지도 못한 정치적・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려 한층 더 무서운 기세로 사람들의 숨을 조여온다. 늘상 그렇듯 수해를 입은 현장에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책임자들’의 자세로 인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분기가 식을 줄 모른다.
수위조절에 실패한 용담댐과 그로 인한 홍수. 곡성 산사태는 뒷산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일어났고 가평 펜션의 일가매몰은 그 위쪽에 있는 과수원개간이 화근이었다. 섬진강 댐 수위 조절을 실패한 수자원공사는 남원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국가하천 둑처럼 지방하천 둑을 높여달라는 주민들의 건의가 묵살되어 영산강은 나주를 휩쓸었고, 섬진강과 화개천은 관리 주체가 달라 계획에서부터 차질을 빚다가 결국은 화개 장터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민들은 하나같이 책임있는 기관의 안이한 일처리 방식과 무턱댄 개발, 주민들이 의견 무시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소가 떠내려가고 몇 년 동안 키워온 농작물이 쑥밭이 되어 논밭이 잠긴 농민들의 심정은 또 어떠할까. 이들은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는 현실 앞에서 어이없는 말로 퉁치는 ‘책임있는 사람들’ 때문에 죽기보다 더 힘든 절망 속에 빠져있다.
모든 게 물에 잠기고 몸만 겨우 빠져나온 이들의 생각은 아마 삶보다 죽음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삶과 단절된 상태에서 흔히 하는 말로 살아갈 용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놀란 가슴에 인간적인 존엄이나 인격이란 말이 가당키나 할 것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분별이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늘이 하는 일이라면 쉽게 포기하고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천재지변은 자연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사고이므로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면책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책과 예산을 독점하다시피 행사하면서도 빈번한 홍수와 가뭄에 대해서는 천재로 몰아가는 국가기관의 행태는 너무 식상하다 못해 피해 국민들의 살아갈 희망마저 앗아버린다. 비록 지금 어렵더라도 앞으로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가진 용기보다 더 큰 용기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세상의 어려움에 맞서 살아간들 그 끝에서 맞딱뜨리는 것이 거짓과 변명이라면 서서히 병들어가는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한단 말인가.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안전한 삶’을 국가에 위탁했는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하고 게다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그 허탈함은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할 뿐이다.
기상청은 21세기 후반(2071〜2100) 한반도 기온은 현재보다 5.7℃ 상승하며 폭염과 열대야 등 기후 관련 극한지수도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와 같은 극한기상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들은 그렇게 특별한 내용도 아니며 거의 상식이 되다시피 한 기후위기이지 않은가. 북극의 온난화는 이웃 나라들에도 마찬가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Cw(온대하우) 기후가 북위 40°까지 북상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 지방이 Cf(아열대습윤)기후로 바뀌어 간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래 한국의 기온 상승폭은 세계평균의 상승폭보다 크다고 한다. 지역적인 편차가 크고, 지역적인 편중 또한 심화되리라 전망한다. 한반도의 토목설계는 길어야 100년인데 올처럼 500년 만의 집중폭우가 쏟아졌으니 짧은 안목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내년도에도 벌써 슈퍼 장마 혹은 폭염을 예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경험치로만 대응하고 일이 터지면 임기응변식으로 뭉개는 정부의 모습이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대한 불확실성을 그저 방송대담으로 끝낼 일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원인을 분석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한편 장기적이고도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더 이상 국민들을 생지옥으로 내모는 일이 없어야 한다.
태풍 ‘바비’가 또 한반도에 강풍과 많은 비를 뿌린다는 예보다. 환경에 관한 한 이미 때를 놓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라도 정신 차려 살아가는 것 말고는 무슨 방법이 더 있을까. 나라엔 책임지고 일할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책임을 다해 보살펴주길 바랄 뿐이다. 어영부영하다가, 모두가 죽지 못해 살아가는 공간에 갇힐 수는 없잖은가.